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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탐구의 다양성: 과학철학의 관점 (강규태)

특집: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탐구의 다양성
: 과학철학의 관점


강규태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pineman@snu.ac.kr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방대한 지식 중에, 과학만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 분야는 얼마 없을 것이다.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내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아냈고, 기술 혁신을 이끌어냈다. 과학의 이러한 성취는 과학의 구성 요소․과학적 설명․과학 이론․과학적 방법론․과학과 진리의 관계 등, 과학의 여러 측면의 본질을 탐구하고, 궁극적으로는 과학이란 무엇인지 밝히려는 철학적 탐구를 촉발했다. 즉, 과학철학적 탐구의 배경에는 과학에 다른 학문 분야와 구분되는 특성, 과학을 매우 뛰어난 지적 성취로 만들어주는 특별한 점이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과학철학의 여러 주제가 과학 고유의 논리·방법론·작동 방식을 다루지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답변하고자 하는 시도는 과학과 비과학, 혹은 과학과 유사과학 사이의 구획 문제(demarcation problem)라고 할 수 있다. 구획 문제는 정당한 과학적 탐구와, 겉으로는 과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학이 아닌 유사과학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구획 문제는 한동안 과학철학의 중심으로 인식되었고, 과거에는 실제로 수많은 저명한 과학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다. 특히 포퍼(Karl Popper)가 제시한 “반증 가능성의 기준”은 과학철학계를 넘어 현장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에게도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유효한 구분으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획 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포퍼를 비롯한 20세기 중반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구획 기준들은 내적 모순을 안고 있거나, 통상적인 과학/비과학 구분을 잘 반영하지 못하거나, 실천적 적용에 한계가 있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과학철학자들 사이에는 정확한 구획 기준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싹텄다. 그 회의의 기저에는 각 과학 분야가 서로 이질적이므로 모든 과학 분야의 공통적인 특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명확한 경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통찰이 있었다. 이러한 이질성, 혹은 다양성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재고하게 했다.

이 글에서는 과학철학이 밝혀낸, 과학적 탐구의 다양한 모습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1절에서는 반증 가능성 기준을 중심으로 구획 문제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고 그것이 어떻게 “구획 문제의 종말”로 이어졌는지 간단히 살펴본다. 2절과 3절에서는 현대 과학철학자들이 밝혀낸, 과학 분야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본다. 2절에서는 오랜 기간 과학의 중심 개념이라고 간주됐던 “자연법칙” 개념이 과학 분야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실제 과학 탐구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연구들을 소개한다. 3절에서는 “과학적 설명”의 방식이 과학 분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을 보인다. 4절에는 그러한 다양성을 수용하더라도 유의미한 구획 기준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살펴본다. 이렇게 과학이 갖는 여러 측면을 살펴봄으로써,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구획 문제의 종말

과학과 유사과학을 구분 짓는 문제는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 양쪽에서 큰 의의가 있다(Mahner, 2007: 516). 이론적 측면에서, 구획 문제는 무엇이 세계에 대한 적절한 탐구인지, 그리고 과학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실천적 측면에서, 구획 문제는 다양한 공적·사적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하다. 공적으로는 교육·공공 정책·법적 판단·연구 펀딩 등의 영역에서, 사적으로는 개개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잘못된 정보를 가려내기 위해 필요하다(피글리우치, 2012; Resnik, 2000).

구획 문제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 포퍼는 반증 가능한 이론만이 과학적이라고 보았다(Popper, 1963). 이론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그 이론을 반증할 위험이 있는 예측을 하고 그 예측을 경험적 데이터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이다. 진정한 시험을 견뎌낸 이론은(반증 가능하고 반증을 시도했으나 반증되지 않은 이론은) 당분간 수용된다. 물론 수용된 이론이더라도 반증 가능성을 유지해야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보전할 수 있으며, 만약 이론과 증거를 수정하거나 재해석해 반증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그 이론의 지위는 손상된다.

포퍼가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인 예로 든 이론은 점성술, 정신분석학 등이 있다. 점성술은 천체 현상이 인간의 운명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점술로, 서양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포퍼는 점성술의 예측이 모호해서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측에 맞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분석학은 어떤 인간 행동이든 이 이론에 맞춰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반증 불가능하다. 정신분석학 계열인 아들러(Alfred Adler)의 개인심리학의 예를 들면,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는 의인의 행동과, 반대로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자의 행동을 모두 열등감 개념으로 설명해버린다.

반대로 포퍼가 진정한 과학의 모범 사례로 본 것은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은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한 예측을 내놓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어지는데, 중력이 매우 강하여 공간이 크게 휘어지면 이 공간을 지나는 빛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마치 휘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예측은 반증 가능하다. 빛의 경로를 계산하여 빛이 어디서 나올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예측한 대로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이론이 틀렸다고 결론 내릴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상대성 이론은 반증 가능한 진정한 과학이다.

이렇듯 반증 가능성 기준은 구획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듯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어떤 이론에 어긋나는 데이터가 나왔다고 해서 그 데이터가 반드시 그 이론의 반증 사례는 아닐 수 있다. 그 이론 자체가 아닌 그 이론과 실험을 연결하는 다른 보조 가정들(예를 들어 “실험 조건이 적절했다”, “실험 기구는 고장 나지 않았다” 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증을 회피하여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낳은 사례가 과학사에 여럿 존재한다. 천왕성의 궤도가 뉴턴 이론에 어긋났지만, 천왕성 바깥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덧붙여 반증을 회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포퍼의 기준은 너무 명백하게 유사과학인 이론도 과학으로 인정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평평한 지구 이론은 반증 가능하기 때문에, 포퍼의 기준에서는 과학이 된다(반증 가능성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엘리엇 소버(2004), 2장 참조).

포퍼 이후로도 여러 학자가 구획 기준을 찾고자 했지만,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라우든(Larry Laudan)은 이러한 실패의 원인이 과학 분야 간의 이질성에 있다고 본다(Laudan, 1983).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은 모든 과학 분야가 만족시키면서 모든 비과학 분야가 만족시키지 못해야 한다. 제시된 기준을 모든 과학 분야가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과학인 분야를 과학이 아닌 것으로 판정할 위험이 있고, 일부 비과학 분야가 만족시킨다면 그 비과학 분야를 과학으로 판정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라우든은 과학의 다양한 분과들이 서로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구획 문제의 종말”을 선언한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과학철학계는, 꼭 구획 문제와 관련해서가 아니더라도, 라우든과 마찬가지로 과학 분과 간의 이질성 혹은 다양성을 인정한다. 이 글의 이어지는 2절과 3절에서는 그러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로 “자연법칙”과 “과학적 설명”을 들고자 한다. 이 개념들에 대한 과학철학적 논의는 구획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과학 분야 간의 다양성을 잘 보여준다.


2. 과학 분야의 다양성 I - 자연법칙 개념을 중심으로

흔히 “자연법칙”은 과학 활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법칙은 과학 이론의 핵심 요소이며, 과학적 설명과 예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다. 자연법칙은 매우 넓은 적용 범위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보편성을 띠며, 조건이 갖추어지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기술한다는 의미에서 규칙성을 띤다. 표준적인 과학 교육과정에서도 다양한 근본 법칙들을 배우며, 그로부터 파생적인 법칙들을 유도하는 법을 연습한다. 

카르납(Rudolf Carnap)은 과학에서 법칙이 갖는 가치와 법칙을 사용하지 않는 생기론을 대비하여 설명한 바 있다(Carnap, 1966: 12-16). 독일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한스 드리쉬(Hans Driesch)는 일종의 생기론을 주장했다. 생물체에는 “엔텔레키”라는 힘이 있어서 모든 생명 활동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드리쉬 당시에도 엔텔레키가 관찰 불가능한 신비스러운 대상이어서 과학에 도입되면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드리쉬는 물리학에서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관찰 불가능한 자기력이나 전기력 같은 힘을 도입하듯이,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관찰 불가능한 엔텔레키를 도입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카르납은 엔텔레키가 자기력이나 전기력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물리학자들은 자기에 대해, ‘만약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어떠어떠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식의 법칙을 도입해 설명한다. 하지만 드리쉬는 엔텔레키와 관련된 법칙을 제시하지 않았다. 즉, 어떤 조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지 정식화하지 않았다. 엔텔레키라는 개념은 이미 알려진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도입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드리쉬의 엔텔레키 개념은 새로운 예측을 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법칙은 우리가 관찰한 사실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아직 관찰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과학적 설명의 구조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견해를 제시했던 헴펠(Carl Hempel) 역시도 법칙의 역할에 대해 카르납과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헴펠은 과학적 설명이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논증이라고 보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어진 조건(전제)에서 법칙(전제)을 따라 특정 현상이 발생한다(결론)”는 형식의 논증이 과학적 설명이라는 것이다(Hempel, 1965: 359-376; Hempel and Oppenheim, 1948). 이를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전제) 조건

    (전제) 법칙

    ————————————————

    (결론) 현상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어떤 거울에 빛을 비추었는데, 그 빛이 거울에서 30º의 반사각으로 반사되었다고 해보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전제) 거울에 입사각 30º로 빛을 발사했다 - 조건

    (전제) 입사각과 반사각은 같다 - 법칙

    ————————————————

    (결론) 거울에서 30º의 반사각으로 빛이 반사됐다 - 현상


이처럼, 헴펠은 현상의 발생을 법칙에 의거해 해명하는 것이 곧 과학적 설명이며, 따라서 법칙이 과학적 설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법칙이 과학적 설명에서 정말로 그렇게 중요한가? 이에 대한 답은 과학 분야마다 다르다. 단적으로, 생물학에는 법칙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법칙의 특성으로 보편성과 규칙성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일반화는 생물학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 현상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에게 혹은 최소한 같은 종의 생물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찾기 어렵다. 게다가, 생물학적 현상은 상황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점에서, 법칙이라고 할 만큼 규칙적이지도 않다. 물론 생물학에도 꽤 넓은 적용 범위를 보이는 일반화도 있고,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도 존재하지만, ‘법칙’이라고 불릴 만큼의 보편성과 규칙성은 지니지 못한다.

굳이 생물학에서 법칙이라고 불리는 것을 찾자면 “멘델의 법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멘델의 법칙은 엄밀한 의미에서 법칙이라고 할 수 없다(Kitcher, 1984). 멘델의 법칙은 세 가지 하위 법칙인 우열의 법칙·분리의 법칙·독립의 법칙으로 나뉘는데, 세 가지 모두에 매우 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독립의 법칙은 “다른 좌위(loci)의 유전자들은 감수분열에서 생식세포가 만들어질 때 독립적으로 전달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같은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은 감수분열시 함께 전달되므로 독립의 법칙을 위배한다. 여기에 더해 키처(Philip Kitcher)는 독립의 법칙이 거짓이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유전학 연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포생물학적 발견들이 고전 유전학에 포함된 이상, 세포 수준의 관점만으로도 독립의 법칙이 다루는 것을 포함해 그 이상의 것들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화학의 법칙은 우리가 흔히 ‘법칙’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수준의 엄밀성은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 주기율(periodic law)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Scerri and McIntyre, 1997). 주기율은 물리학의 법칙과는 크게 다르다. 주기율은 물리법칙만큼 정확하지 않으며, 수학적 관계식으로 형식화되지도 않고, 더 근본적인 이론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주기율은 물리법칙과 매우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보편적이고 규칙적인 법칙이다. 

심지어 물리학 내에서도 언제나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카트라이트(Nancy Cartwright)에 따르면 글자 그대로 참인 법칙은 매우 드물다(Cartwright, 1980). 물리학에서 대부분의 법칙에는 실제로는 “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이 같다면)”라는 말이 붙어야 한다. 중력 법칙

을 예로 들어보자. 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대상은 무척 드물다. 이 법칙은 오직 두 가지 물체 사이의 중력만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물체들의 중력도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두 물체 사이에도 전자기력 등 다른 힘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법칙이 글자 그대로 참이 되는 경우는 전 우주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낼 수가 있다. 법칙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참이 아니다. 반대로 법칙에 “다른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와 같은 조건을 붙인다면 설명력(적용 범위)이 매우 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분야일수록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아주 단순한 계를 다루는 하위 분과라면 법칙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복잡한 현상을 다룰수록, 물리학에서도 법칙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과학에서 법칙이 중요하다는 통념은 옹호하기 어렵다. 법칙이 거의 없거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 분야도 있고, 법칙의 일반적인 관념인 물리학 법칙과는 다른 유형의 법칙이 사용되는 분야도 있으며, 물리학에서조차 법칙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법칙이 과학적 설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헴펠의 입장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보인다. 과학의 각 분야는, 심지어 과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었던 법칙 개념의 중요도조차 크게 다를 정도로 매우 이질적이다.


3. 과학 분야의 다양성 II - 과학적 설명을 중심으로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설명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진 것인지는 과학철학에서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앞서서 헴펠은 과학적 설명의 구조에 대한 영향력 있는 견해를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카트라이트가 지적했듯이, 물리학에서 다루는 현상은 글자 그대로 참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 설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카트라이트와 기어리(Ronald Giere)를 필두로, 여러 과학철학자는 모형(models)이 과학적 설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Cartwright, 1983; Giere, 1999). 여기서 모형이란, 이상화, 추상화를 통해 실제 현상의 특정 측면만을 표상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모형의 대표적인 예로 기체분자운동론에서 가정하는 완전탄성충돌체로서의 기체 분자를 들 수 있다. 기체분자운동론에서는 실제 기체 분자가 갖는 여러 가지 속성들을 생략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서로 충돌한다는 이상화, 추상화된 완전탄성충돌체들의 시스템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시스템 내에서 기체 분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추론하여 등의 관계식을 설명한다. 이러한 모형은 기체 분자의 모양, 기체 분자의 실제 탄성, 기체 분자 간에 작용하는 다양한 인력과 척력, 지구 중력의 영향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지만, 적어도 그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특정 측면(기체 온도와 부피의 관계, 압력과 부피의 관계 등)을 드러내 준다. (모형을 지하철 노선도에 비유하는 것도 모형이란 무엇인지 이해에 도움이 된다. 실제 지하철은 역 간의 거리도 다르고 역의 크기도 제각각이며 역과 역 사이의 경로는 직선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역의 순서뿐이기 때문에, 실제 지하철 노선의 다양한 측면들을 생략하고 역의 순서만 남겨놓은 지하철 노선도를 사용한다.)

모형을 통한 설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설명이 있다. 과학자들이 실제로 조작하고 개입하기가 어려우며, 해당 현상에 관련된 구성 요소들이 매우 많고 그 상호작용이 복잡한 경우, 과학자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 시뮬레이션은 실제 현상의 구성 요소와 그 기능을 컴퓨터상에 구현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혹은 현상이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를 보여준다. 

시뮬레이션은 실험을 통해 어떤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고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길버트(Nigel Gilbert)와 트로이츠쉬(Klaus Troitzsch)는 실험에서는 실제 연구 대상인 현상을 통제하는 반면, 시뮬레이션은 현상 자체가 아닌 그 모형을 통제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Gilbert and Troitzsch, 1999). 물론, 실험이 연구 대상 그 자체를 통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구알라(Francesco Guala)는 실험에서 조작 대상이 관심 대상과 유사한 것은 물질적 측면이지만, 물질적으로 유사하지만, 시뮬레이션에서는 대상과 대상 간의 유사성이 단지 형식적일 뿐이라는 점에서 실험과 시뮬레이션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Guala, 2002; 2008).

한편, 생물학에서는 법칙보다는 특정 분자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다. 과학철학계에서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는 산발적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었으나(예를 들어, Bechtel and Richardson, 1993), 머캐머(Peter Machamer)·다든(Lindley Darden)·크레이버(Carl Craver)가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한 뒤 과학철학의 주된 주제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과학의 여러 분야, 특히 신경과학과 분자생물학에서 만족스러운 과학적 설명은 메커니즘에 대한 기술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메커니즘이란 개시상태에서 종결상태까지 규칙적인 변화를 산출하도록 조직화한 대상과 활동이다. 대상들은 활동이 일어나기에 적절한 곳에 위치해야 하고, 구조 지어져야 하고, 방향 지어져야 하며, 그것들이 관여하는 활동들은 일정한 시간 순서, 속도, 지속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특정 메커니즘에 어떤 대상과 활동이 속하는지, 그 대상과 활동은 어떤 속성들을 갖는지, 그 속성들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결과물을 산출하는지 등을 기술하면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Machamer et al., 2000).

예를 들어, 화학적 신경전달 메커니즘에서 시냅스 전 뉴런은 시냅스 후 뉴런에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는 시냅스 틈에서 확산되는 신경전달물질 분자들을 방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분자들은 수용체에 결합하고, 그럼으로써 시냅스 후 뉴런을 탈분극화한다. 이렇게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는 “결합”이라는 활동을 하는데, 이러한 활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대상이 가까이 위치해야 하고, 결합하기에 적절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져야 하는 등 적절한 속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의 다양한 속성들, 그리고 그 속성들이 상호작용하여 결과물을 산출하는 방식을 기술함으로써 신경전달 과정이 설명된다. 이와 같은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메커니즘을 통한 설명은 헴펠 등이 이야기했던 법칙을 통한 설명과 매우 다르다. 메커니즘을 통한 설명은 논증 형식도 아니고 법칙에 대한 언급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생물학이나 인지과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른 설명 유형으로 어떤 대상의 목적이나 기능을 밝히는 “기능적 분석”도 있다. 헴펠이 과학적 설명으로 염두에 둔 것은 현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면, 기능적 분석은 어떤 시스템의 목적과 기능을 밝히는 설명이다. 이러한 설명의 대표적 예로는 “심장의 기능은 생물의 혈액을 펌핑하는 것이다”와 같이 생물의 기관의 기능을 밝히는 진술이 있다. 헴펠은 이러한 진술이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기능을 하기 위한 조건들이 이러한 설명에 명시되지 않았으며, 올바른 기능 설명을 “심장의 기능은 박동 소리를 내는 것이다”와 같은 잘못된 설명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Hempel, 1965, pp. 305-306). 

라이트(Larry Wright)는 헴펠이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능적 분석의 형식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X의 기능은 F다”라는 진술은 (a) X는 F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b) F는 X가 존재한다는 점의 결과라는 점을 의미한다(Wright, 1973). 라이트의 분석은 진화생물학적 통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a)는 “X는 F하기 때문에 자연선택되었고”라는 말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심장의 기능이 혈액 펌핑이라는 점을 잘 설명한다. (a) 심장은 혈액을 펌핑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b) 혈액 펌핑은 심장이 존재한다는 점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심장의 기능이 심장 박동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잘 짚어낸다. 심장 박동은 (b)를 만족시키기는 하지만, (a) 심장은 박동 소리를 내기 때문에 존재하는(자연선택된)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기능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자들이나 인지과학자들은 꼭 어떤 기관이나 인지 과정의 진화적 역사를 추적하지 않고도 그 기능을 알아낼 수 있다. 앞서 예를 든 심장의 기능은 진화생물학이 정립되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것이다. 또한, 어떤 기관은 그것이 진화된 기능과 다른 기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커밍스(Robert Cummins)는 한 구성 요소의 기능을 더 큰 조직화 된 시스템에서 그 구성 요소가 수행하는 역할에 의거해 해명하는 방식의 기능적 분석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Cummins, 1975). 심장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심장의 기능은 혈액을 펌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적절한 이유는, 심장이 속한 전체 순환계에서 심장이 담당하는 역할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순환계는 동물의 신체 내에서 영양, 산소, 노폐물 등을 수송하며, 이는 심장이 혈액을 펌핑한다는 점에 의존한다. 반면 심장의 기능이 박동 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설명은, 전체 순환계가 수행하는 일에 비추어 볼 때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형식의 설명을 이야기했지만, 이것들은 법칙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비교적 규칙적인 현상에 적용되는 설명이다. 그런데 우연적이고 때로는 단 한 번 일어났던 현상들을 다루는 과학 분야들도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루는 고고학(“왜 이 유물은 이 시기에 나타났는가?”)·지질학(“판게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여러 대륙으로 분리되었는가?”)·천문학(“이 은하는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가?”)·고생물학(“이 생물은 왜 멸종했는가?”)·진화생물학(“이 기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는가?”) 등 소위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s)”이라고 불리는 분야들이 그렇다. 이런 분야들에서 설명은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과 관련하여 남아있는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 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등 전후 맥락에 대한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내러티브는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한 연대기 같은 것이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연결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연결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빈 곳을 채워 넣기 위해 내러티브는 어느 정도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추정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이 내러티브를 통한 설명을 불확실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와 연관되어, 남아 있는 증거들과 일관적이기만 하면 어떤 내러티브도 허용될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진화생물학의 적응주의 연구 프로그램이 “그럴듯하기만 한 이야기(just-so stories)”를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비판 역시 내러티브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적응주의 연구 프로그램이란, 생물의 어떤 형질이 왜 진화했는지에 대해, 어떻게든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식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굴드(Stephen Gould)와 르원틴(Richard Lewontin)은 생물의 진화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러한 대안적 설명을 고려하지 않는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잘못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Gould and Lewontin, 1979).

이러한 위험이 있다면, 내러티브를 통한 설명이 어떻게 적절한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커리(Adrian Currie)와 스티렐니(Kim Sterelny)에 따르면 역사과학에서의 추정이 추가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일을 인도함으로써 더 잘 뒷받침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Currie and Sterelny, 2017). 예를 들어 어떤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물속에서 찍혔다고 보는 가설은, 과학자들이 그 공룡이 수중 생활에 적합했는지 생체역학적 연구를 하게 한다. 또한, 추정의 정합성은 내러티브에 매우 엄격한 제약을 가한다. 예를 들어 공룡이 대규모로 멸종한 백악기-팔레오기 대멸종(K-Pg 대멸종) 시기 동물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한 설명은 운석으로 인해 생성된 크레이터, 이리듐 층에 대한 지질학적 화학적 증거, 운석 충돌로 형성된 석영에 대한 증거, 흑요석, 지역적·전지구적인 환경 변화, 그리고 대멸종 전반에 대한 통합과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증거와 모두 정합적인 추정을 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우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수록 가능한 내러티브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처럼, 주변 분야에서 나온 증거들과의 정합성은 내러티브 설명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4. 가족 유사성 집단으로서의 과학?

지금까지 법칙과 과학적 설명을 중심으로 과학 분야들이 서로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살펴보았다. 과학의 핵심 개념으로 여겨졌던 법칙 개념은 과학 분야마다 다르고, 어떤 분야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설명은 법칙을 포함한 논증 형식뿐만 아니라 모형·시뮬레이션·메커니즘·기능적 분석·내러티브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이러한 이질성을 고려할 때, “구획 문제의 종말”을 선언했던 라우든의 주장처럼,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확고한 구획 기준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라우든은 구획 문제에 매달리는 대신, 일반적으로 과학을 평가할 때 쓰는 기준들을 적용해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Laudan 1982, 1983). 즉, “이 이론은 과학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충분한가?”, “이 이론은 풍부한 발견을 끌어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창조과학과 같은 분야는 유사과학이라기보다는, 수준이 떨어지는 과학일 뿐이다. 그리고 창조과학을 과학에서 배제하지 못한다고 해서 별다른 문제는 없다. 평가 기준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각종 생명 현상과 지질 현상을 훨씬 잘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이나 판 구조론이 있는데도 창조과학을 지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구획 기준을 찾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라우든의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는 “구획 문제: 라우든에 대한 (뒤늦은) 답변”이라는 논문에서 여전히 구획 문제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Pigliucci, 2013). 과학의 여러 분야가 이질적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라우든은 그 정도를 과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글리우치는 과학 분야들이 이질적이라고 해도 구획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필요충분조건인 구획 기준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가족 유사성에 기반을 둔 기준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족 유사성이란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제안한 개념으로, 한 집단 내 모든 구성원에게 해당하는 공통점은 없지만, 구성원들 각각이 서로 몇몇 측면에서는 유사한 경우를 가리킨다(Wittgenstein, 1953). 이는 마치 한 가족 구성원들 모두의 외모에 공통된 요소는 없지만, 구성원 중 어느 두 사람은 코가, 어느 두 사람은 눈이, 어느 두 사람은 입이 닮은 등, 구성원 서로가 조금씩 겹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한 가족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피글리우치는 과학의 각 분야가 서로 조금씩 겹치며 연결되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리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피글리우치는 과학이 전부/전무의 개념이 아니라 정도 차이가 있는 개념이라고 본다. “경험적 지식(empirical knowledge)”과 “이론적 이해(theoretical understanding)”라는 두 가지 기준을 통해 어떤 분야가 더/덜 과학적인지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 모두를 아주 잘 충족시키는 분야는 확고한 과학 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피글리우치는 그 사례로 입자물리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기후과학을 든다. 이 분야들은 확고하게 과학으로 인정받는 집단을 이룬다. 그리고 두 가지 기준 중 하나만 잘 만족시키는 분야들이 있다. “이론적으로 정교하지만 경험적 입증이 되지 않은 분야” 집단에는 일반적인 입자물리학만큼 이론적으로 정교하지만 실험과 관찰은 매우 어려운 끈 이론, 진화생물학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역시 실험과 관찰이 사실상 불가능한 진화심리학 등이 속한다. 다른 쪽에는 경험적 근거가 풍부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덜 체계화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사과학”으로 간주되는 분야가 또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경험적 근거와 이론적 체계성이 모두 떨어지는 분야가 속한다. 점성술(한국에서는 사주팔자가 여기에 대응될 것이다), 지적설계론, 에이즈 부정론 등이 그 예이다. 

정리하자면, 피글리우치는 이론적 체계성의 정도와 경험적 입증의 정도가 유사한 분야끼리 집단으로 묶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경계를 그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라우든의 주장에서 과학 분야들은 서로 이질적이라는 점과 통상적으로 과학을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한 것이다. 반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는 존재한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라우든과 의견을 달리한다. 

피글리우치의 입장이 옳은지, 아니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긋고 과학을 규정하는 다른 방식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글리우치의 입장은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다. 과학이 가족 유사성 집단으로 묶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과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을 규정 짓는 공통된 특징을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5. 결론

이 글에서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학철학자들의 노력과, 이와 별개로 진행되었지만 같은 질문에 대해 시사점이 있는 다른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포퍼는 반증 가능성 기준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지만, 이 시도는 여러 문제를 맞닥뜨렸다. 포퍼 이후로도 여러 과학철학자가 각자 나름의 구획 기준을 제시했지만, 어떤 기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라우든은 이러한 실패가 과학의 각 분과 간의 이질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구획 문제와는 별도로 논의되었던 여러 과학철학적 탐구 역시 과학 분과들이 서로 이질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20세기 중반의 과학철학자들은 “자연법칙” 개념이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지만, 이후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 분야마다 법칙의 특성과 중요성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학적 설명” 역시 과거에는 법칙을 포함한 논증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과학 분야마다 모형·시뮬레이션·메커니즘·기능적 분석·내러티브 등 다양한 형식의 설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러한 흐름 하에서, 과학을 규정하며 모든 과학에 공통적인 특징은 존재하지 않고, 과학은 가족 유사성 집단이라는 입장도 등장했다.

이런 탐구 결과, 포퍼를 위시한 과거 과학자들이 추구했던 이상, 즉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딱 떨어지는 답변을 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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