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몸
드러난 피부에 나타나는 것들: 한국 의료계의 탈모에 관한 논의와 젠더 위계
민병웅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woong2woongc@gmail.com
들어가며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리면서 머리카락이 얼마나 흩날리며 떨어져 있는지 보게 된다. 화장실 청소 중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치우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머리카락이 내 몸과 분리되고 있음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안도’할 수도 있겠다. 본인 머리카락이 굵고 풍성하고 집안에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없다면, 굳이 머리를 싸매가며 시중에서 파는 수많은 탈모 예방 샴푸, 보조제 등을 신중히 고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는 머리카락이 없어져서 느끼는 ‘외형적 위화감’을 걱정하는 자연스러운 정서일까? 구약성서 열왕기에 엘리사가 어린아이에게 탈모로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실려있음을 생각을 해보면 탈모에 관한 사람들의 고민은 꽤 오래된 것 같긴 하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가 탈모에 관해 한탄하며 남긴 시,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자신의 벗겨진 머리로 인해 벌레 물림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역을 막론하고 탈모에 관한 고민은 퍼져 있었다. 하지만 과거 탈모에 관한 표상은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늙고 병약함 등 부정적인 것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대머리는 연륜의 상징이자, 존경할 만한 어른의 이미지를 상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했던 탈모에 관한 단상들은 오늘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순간 탈모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한 탈모에 관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탈모를 다루는 의학 연구들은 대부분 탈모를 질병(disease)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Jankowski and Frith, 2017).
이 글은 탈모에 관한 과학학적 접근이 남성의 몸을 비롯한 여러 몸이 각기 다른 양상으로 젠더화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1960~1990년대 한국 피부과 의사들의 탈모에 관한 연구, 제약 회사들의 광고, 피부과 의사의 대중 매체 활동 자료 등을 살핀다. 오늘날 탈모를 건강보험에 넣어야 한다는 논의가 대선 후보 공약에 등장하는 등 탈모를 의료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탈모에 관한 담론에서 의료계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탈모에 관한 인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탈모를 통해 몸에 관한 여러 담론적, 물질적 논의를 이해하는 것은 크게 세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탈모는 피부를 과학기술과 몸의 관계를 살피는 중요한 장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적합한 사례이다. 우리는 어쩌면 거의 매 순간 피부를 관리한다. 피부과에 정기적으로 내원하는 것만이 피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화장하거나 선크림을 바르는 행위, 목욕하는 행위, 피부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 건조한 피부나 입술을 위해 립밤을 바르는 행위, 털을 밀거나 다듬는 행위 모두 피부 관리의 일환이다. 이를 고려하면, 다양한 사회구조적 의미, 담론들이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실천들에 영향을 준다는 미셸 푸코(Michael Foucault)의 통찰이나, 어떻게 몸을 실천하는지에 따라 어떤 존재가 정의된다는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의 견해 등 오늘날 과학학에서 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되는 분석틀 가운데 어떤 것을 따르더라도(Foucault, 1977; Mol, 2002), 피부는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몸을 다루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피부를 다양한 물질과 담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피부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실천들을 추적하거나,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변화에서 피부가 갖는 의미를 추적하려는 하려고 한다. 이런 연구들은 피부가 시각 문화와 촉각 문화를 연결하는 감각 기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피부가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개(skinship)이자, 자연과 몸을 연결하는 공간(skinscape)이 된다고 지적한다(Lafrance, 2018; Howes, 2018). 때때로 피부에 새겨진 기억은 국가 폭력이나, 재난 등을 기억하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Kim, 2022).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피부 관리에 관한 ‘과학적’ 실천들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더 나아가 피부 관리를 위한 각자의 실천들이 어떻게 피부에 관한 지식을 구성하고, 피부 관리 제품에 반영되는지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학술적 논의를 고려하면, 두피에는 다른 피부 부위와 비교해 더욱 복잡한 의미나 담론들이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피는 옷 밖으로 노출하는 피부 중에서 가장 모발이 많이 자라나는 곳이고, 다른 피부보다 모낭과 피지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두피를 잘 관리하기 위한 실천들은 모발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사람들은 두피를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혹은 모발을 가꾸기 위해 샴푸, 린스, 크림, 왁스, 스프레이 등 다른 피부에는 잘 쓰지 않는 별도의 제품을 사용한다.
머리카락이 두피를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에서 자라는 털들과는 다른 의미와 연결된다는 점도 사람들이 모발 관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다. 과거 남성의 체모는 남성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대이다. 체모를 제거하는 일은 단정하고 위생적으로 몸을 가꾸는 행위로 받아들여져, 털이 없는 매끈한 피부는 깔끔한 용모에서 나오는 신체 매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의든, 타의든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은 이성애적 매력을 표상하지 않는다(Frank, 2014).
둘째, 탈모를 과학학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일은 남성의 몸을 둘러싼 정상성이나 규범들이 어떻게 남성성을 구성하고 강화하는지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탈모에 관한 과학학적·의료인문학적 연구는 매우 드물다. 과학학이나 의료 인문학 분야를 비롯한 주요 학술지에서 “대머리(baldness)”나 “원형 탈모(alopecia areata)”를 검색해도 과학학이나 인접 분야의 방법론으로 탈모를 분석한 연구들은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탈모를 의료 사회학, 역사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일부 연구들은 탈모 문제를 통해 남성성과 몸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2000년대 초반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Peter Conrad, 2006)는 남성 노화의 의료화(medicalization)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안드로겐 탈모증을 다뤘다. 그는 명확한 진단기준과 확실한 치료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에 관한 시장이 커지는 방식으로 탈모가 남성적인 질환으로 의료화 되었다고 보았다. 탈모를 다룬 다른 사례로는 16~17세기 잉글랜드 신사들의 일기나 회고록 등을 분석한 아누 코로넨(Anu Korhonen)의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모발의 존재와 부재 모두 남성성을 나타낼 수 있으며, 개인이 처한 사회구조적 상황이나 일상 경험에 따라 그 탈모가 표상하는 남성성의 의미가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Korhonen, 2010). 이러한 연구들은 탈모에 관한 표상이나 담론을 분석하는 것이 남성의 몸에 얽힌 남성성을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는 점을 보여왔다. 이 글도 이런 선행 연구들의 통찰을 수용해 한국에서 탈모가 어떤 방식으로 젠더와 연결되는지 추적한다.
셋째, 탈모의 문제가 피부를 잘 관리하는 문제, 다시 말해 몸을 잘 가꾸는 실천 중 하나임을 이해한다면 남성의 몸이 젠더화된 시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여성을 비롯한 여러 몸의 탈모가 어떻게 상이한 방식으로 그려지는지, 그에 따라 탈모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물론 탈모를 고민하는 다수가 남성이었다. 이에 따라 탈모 치료를 말하는 의료인이나 기업들도 주요 소비자들을 남성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남성 탈모에 관한 의약품 선전이나 의학 연구 가운데 여성들의 탈모 역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를 들여다보면, 남성들의 경험이 주로 논의되는 탈모 문제도 철저히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적인 기준이 중시되는 젠더 위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탈모 문제: 젊은 남성과 정신적 요인
머리카락이 과도하게 빠지는 신체 현상을 병리적인 것으로 보고 여러 치료법을 고민한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내경』이나 히포크라테스의 의료에 관한 문헌들에서도 탈모의 양상과 치료 방식에 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록들은 너무 달거나 쓴 음식을 섭취하면 탈모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거나, 탈모 치료를 위한 연고 조제법을 상세히 소개하는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탈모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흔히 오늘날 원형 탈모를 의학적으로 일컫는 alopecia areata라는 표현도 18세기 프랑스의 의학자 프랑수아 부아시에(François Boissier, 1706-1767)가 명명한 이래 19세기부터 탈모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탈모에 관한 의료계의 관심이 오래된 만큼 탈모의 병인과 치료 방법도 다채로워졌다. 중세 유럽에서는 탈모가 피의 오염에 의해 발생했고, 그에 따라 피를 맑게 해주는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세기에는 일부 의사들이 탈모의 병인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탈모를 감염성 질환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말부터 피부과 의사들과 정신의학자들은 탈모의 원인으로 특정 신경 기관의 손상을 꼽았다(Broadley and McElwee, 2020).
오늘날 탈모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하는 안드로겐 탈모증은 미국의 해부학자 제임스 해밀턴(James Hamilton)이 남성 호르몬의 과도한 분비와 탈모가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Hamilton, 1951). 이후 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 모발을 가늘게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드로겐 탈모증의 발생 과정에 관한 기전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러나 남성 호르몬이 모든 탈모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탈모의 증상과 유형에 따라 두피의 상태, 정신적인 요인, 면역체계의 문제, 피부질환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Fechine et al, 2022; Sterkens et al, 2021; Lolli et al, 2017).
오늘날 탈모 치료제로 쓰이는 미녹시딜(Minoxidil)이나 트리코젠(trichogen) 계열의 의약품은 그 효능이 196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래 미녹시딜은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1988년 미국 FDA가 탈모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였다. 이 무렵 탈모 치료제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이처럼 탈모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기 위한 오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의료계에서도 탈모에 관한 연구가 일찍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해방 이후 한국 의료계에서도 탈모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 초부터 확인할 수 있다. 탈모에 관한 의학적 연구는 피부과 의사들과 정신의학자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 연구들은 주로 탈모의 병인을 밝히거나 실질적인 치료 방법을 제안하기보다는, 피부과에 내원한 환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탈모 증세를 보이고 있는지 조사하는 연구부터, 탈모와 정신질환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이승원․장진요, 1966; 박민서, 1978; 박연래 외, 1981; 오세임․이정숙․김정숙․심순국, 1960). 탈모를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부과 의사들은 탈모의 실태를 먼저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탈모 연구는 젊은 남성이 경험하는 탈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콘래드는 남성의 노화가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어가는 한 사례로 탈모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안드로겐 탈모증을 사례로 탈모를 다룬 것과는 달리, 20세기 중반 한국에서 탈모에 의학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청년층에게 주로발생하는 원형 탈모(alopecia areata)였다. 왜 안드로겐 탈모증에 관한 연구보다 원형 탈모에 관심이 쏠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탈모에 관한 임상적인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의사들은 한국에서 탈모가 어느 정도로 발생하는지 먼저 추적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남성의 스트레스에 방점을 두는 경향은 한국에서 탈모에 관한 초기 연구가 일부 군병원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1981년 국군 수도 종합병원에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계 연구는 다면적 인성 검사(MMPI)를 활용해 병사들의 정신질환을 측정하고, 동시에 병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군 복무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통계를 제시했다. 이 연구는 군 복무 기간이 긴 장병일수록 상대적으로 탈모 발생 빈도가 높았다고 지적하며, 군 복무에 의한 정신적인 부담이 탈모의 원인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했다(박연래 외, 1981).
탈모를 젊은 남성들의 문제로 상정한 연구들은 1980년대 후반에도 찾아볼 수 있다. 중앙대학교 피부과학 교실에서 탈모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던 피부과 의사 노병인은 1981년부터 1986년,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중앙대학교 병원을 내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원형 탈모 발생 빈도와 양상에 관한 임상 통계를 정리했다. 이 연구에서는 원형 탈모 문제가 20~30대 남성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젊은 남성들의 탈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임기섭․노병인․장진요, 1986; 전태진․홍창권․노병인, 1991).
대중 매체를 통해 의사들은 탈모 문제를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한 폐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렸다. 청년들이 도시의 깨끗하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이직과 바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탈모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노병인은 원형 탈모의 증가 요인을 “경쟁 사회”로 지목하면서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부터 직장 생활에서의 회식 문화에 따른 불균형한 식습관을 해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경향신문, 1975; 국홍일, 1989: 226; 경향신문, 1992). 이러한 글들은 1980년대까지 탈모가 젊은 남성들이 처한 여러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신체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탈모 치료의 상업화와 남성의 몸
의사들이 한국인의 탈모 현상을 진단하고 원인에 관심을 기울일 무렵, 제약계에서는 탈모 치료를 표방하는 의약품들을 시장에 출시했다. 해방 이후 한국 탈모 치료제 시장이 형성되는 초장기에, 탈모 치료제라는 명확한 용도를 내세워 홍보된 약품은 삼공제약의 모나신이었다. 모나신은 테스토스테론이 함유된 피부염 치료제로 탈모 부위에 도포하는 연고였다. 이 연고는 1960년대 초부터 미녹시딜 계열의 탈모 치료제가 국내 제약 회사들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까지 시장에 꾸준히 유통되었다. 1980년대가 되면, 동아제약, 한미약품, 현대약품 등에서 미녹시딜 계열의 탈모 치료제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현대약품은 마이녹실이라는 이름으로 미녹시딜을 제약 시장에 내놓았으며, 동아제약은 이탈리아 제약 회사 폴텐(Foltene)과 협력해 그들이 개발한 발모 물질인 트리코사카라이드(Tricosaccaride)를 함유한 홀텐을 출시했다. 트리코사카라이드 역시 미녹시딜과 마찬가지로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물질이었고, 발모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발모제로 활용되었다.
탈모 치료제들의 등장은 제약 시장에서 탈모 관련 제품의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한 기사에 따르면, 제약 시장에서 탈모 치료제의 매출은 1986년 약 20억 규모에서 1988년 50억 규모로 상승했다. 실제로 이 시기 탈모 치료제들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과 시장 경쟁을 다루는 기사들은 탈모 치료제시장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앞다퉈 보도했다(동아일보, 1987; 매일경제, 1988).
당시 의료인들도 탈모 치료제의 효과를 낙관했던 것으로 보인다.피부과 의사들은 미녹시딜 등 발모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여러 의약품의 실제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은 근무하는 여러 대학병원의 환자들을 표본으로 미녹시딜 계열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들은 탈모 치료제가 구미의 환자들에 비해 한국의 탈모 환자에게서 더 효험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탈모 치료제의 효과에 힘을 실어주었다(국홍일, 1986; 이민걸 외, 1986).[1]
탈모 치료제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는 당시 대중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의사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화여대 피부과학 교실 주임교수였던 국홍일(1937-2019)[2] 은 피부 관리에 관한 여러 대중 저술에서 최근 출시되고 있는 탈모 치료제들이 “대머리 환자”들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국홍일, 1986: 152).
1980년대 중반 상대적으로 효험이 있는 탈모 치료제의 등장으로 인한 제약 시장의 성장, 1970년대 중반부터 성형외과 분야에서 모발 이식술이 개발되고 있던 상황은 여러 병원에서 탈모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클리닉을 개설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중앙대학교 피부과학교실은 탈모 클리닉을 개설해서 탈모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1990년대가 되면 소규모 병원에서도 탈모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클리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대형 병원들에서 코골이, 탈모, 디스크, 손발을 늘려주는 사지 연장 등 생사와 직결되지는 않으나,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신체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클리닉이 증가하던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매일경제, 1998).
탈모에 관한 의료계의 관심이 지속되는 가운데, 탈모 경험을 대표하는 대상은 남성의 몸이었다. 의학계에서도 젊은 남성에게 탈모가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었으며, 미녹시딜 등의 탈모 치료제 효과를 선전했던 해외 연구들과 매체에서도 탈모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의 사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탈모에 관해 선전했다(Dutrée-Meulenberg et al, 1988).
한국에서 탈모를 경험하는 남성의 몸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제약 회사들이 신문 지면에 실었던 광고들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1960~80년대 모나신 광고에 꾸준히 등장한 모자를 벗어 던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성 캐리커처가 등장하는 광고이다. 머리가 벗겨진 젊은 남성이 탈모를 가리기 위해서 썼던 모자를 약을 먹음으로 인해 ‘탈모(脫帽)’할 수 있다는 재치 있는 방식으로 표현했다(동아일보, 1965). 이러한 광고는 탈모가 남성이 경험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특히 탈모 치료제 광고들은 탈모 증상을 겪는 남성의 사진을 직접 실어, 약 복용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는 구도가 일반적인 광고 전략으로 등장했다(경향신문, 1988; 동아일보, 1962).
이처럼 탈모의 문제가 의료계에서 상업화되는 과정은 탈모를 겪는 남성의 몸이 치료할 수 있는 몸이라는 관념이 재생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탈모 치료에 관한 다양한 방법들의 도입과 탈모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료 시설의 등장은 탈모 치료의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다만, 젊은 남성의 탈모 원인이 스트레스에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사회적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탈모 치료 시장은 클리닉을 찾은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발모제를 사용하거나, 일정 수준의 신경안정제를 처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국홍일, 1989: 226-227).
탈모는 남자의 고민인가?: 여성에게 가중되는 탈모 문제
그러나 탈모가 남성들만 고민하는 질병이 아니듯이 여성들이 탈모를 걱정하지 않았다거나 의사들이 여성 환자들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탈모에 관한 문제를 논의할 때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남성이었지만, 여성 환자들도 의사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일부 연구는 원형 탈모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남성에 못지않게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임기섭․노병인․장진요, 1986).
탈모 치료제 광고에서도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광고들이 등장했다. 모나신 광고는 여성들도 약을 통해 발모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모발뿐만 아니라 눈썹 무모증 치료 효과를 선전했다. 삼공제약은 눈썹에 바르는 연고 모나신G를 출시하며 여성들의 눈썹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약으로 홍보했다. 이런 광고 전략은 질정제와 모나신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탈모 치료제를 선전하는 광고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동아일보, 1972). 여성들이 관심을 보일 제품과 발모제를 나란히 두면서 모나신과 모나신G를 통해 여성도 발모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여성 독자들의 소비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더불어 발모제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탈모 증세를 보이는 여성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는 선전도 확인할 수 있다(동아일보, 1974).
탈모가 남성만의 문제를 넘어 ‘일반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은 탈모에 관한 의료 산업의 규모가 커지던 198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진다. 남성 탈모에 관한 심각성이 의사들 사이에서나 대중 매체에서 계속 언급되는 한편으로 탈모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피부과학계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탈모의 양상과 빈도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윤석권․김홍용․임철완, 1995; 이인섭․임철완, 1998).
특히 이길홍 외(2000: 31)의 연구는 여성에 대한 정신의학적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여성들이 탈모로 인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이 남성보다 크고, 이에 따라 더 심한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으므로, “여성 탈모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길홍 연구팀의 결론은 여성의 탈모 스트레스가 남성보다 크다는 해외 학계의 결론과 동일했다(Cash et al, 1993). 다만, 1990년대는 한국에서 정신질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신보건에 관한 제도가 확립되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김민아, 2020).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이 시기 여성 탈모에 관한 의료계의 관심 증대는 탈모 문제가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 등 여러 분과에 걸쳐 있는 복합적인 문제가 되어, 탈모가 여성 환자들이 종합적인 의료 서비스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다뤄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여성 탈모에 관한 논의는 피부과 의사들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홍일은 1980년대 중반부터 피부 관리에 관한 의학적 정보를 담은 대중서를 여러 차례 출판했다. 이 책들은 여성을 주요 독자층으로 두어 여성들의 화장법이나 피부 관리, 피부를 가꿔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 설명했다. 여성 탈모는 피부 관리를 위해 알아야 할 내용으로 국홍일이 저술한 책 대부분에 한 장을 차지했다(국홍일, 1986; 국홍일, 1987; 국홍일, 1989).
국홍일의 피부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면, 여성 탈모가 남성 탈모와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는 지점들을 포착할 수 있다. 국홍일은 남성 피부와 여성 피부가 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남성은 남성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 피지가 많이 생겨 더 매끈한 피부를 가졌다고 보았다. 남성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다면 거친 피부를 지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피부 관리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었다(국홍일, 1989). 국홍일이 보기에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균형 잡힌 식사, 자기 피부 유형에 맞는 화장품의 사용과 화장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이런 시선에서 탈모 관리를 바라보면, 이는 피부 관리 전반의 실천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다. 탈모를 잘 예방하는 방식은 두피 청결, 충분한 숙면과 영양 보급 등으로 피부 전반을 관리하기 위해 해야 했던 실천들과 유사했다. 모발 관리와 피부 관리는 구체적인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차이는 국홍일이 보기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슬픈 여성”들의 “운명”이었다(국홍일, 1989: 176). 국홍일에게 의학은 여성들 각자가 터득한 피부 관리 방식이나 기업의 제품 홍보로 전달되는 ‘잘못된’ 지식을 막고, 여성들을 도와 건강하고 아름답게 피부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었다.
여성 탈모는 가부장과 이성애라는 ‘정상성’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그려졌다. 국홍일은 “대머리 여성에게 청혼할 남성은 없을 것인 만큼 그 여성에게는 그것이 평생의 행복”이 달린 문제라고 해석했다. 물론 남성들도 탈모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혼할 수 없다거나 미관상 좋지 못하다는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남성 탈모에 비해 여성 탈모가 결혼을 위해서 더욱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되었다. “남성은 그렇다 치고 (......) 여성의 머리가 식수(植樹)가 잘 안된 민둥산 같다면 그 고민은 굉장”하다는 표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국홍일, 1987: 150).
더불어 여성의 탈모 경험은 남성들의 경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은밀하게 다뤄져야 했다. 국홍일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여성 환자들은 가발을 쓰고 내원하거나, 탈모에 관한 고민을 묵혀두다가 결혼을 앞두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국홍일, 1989; 국홍일, 1987; 국홍일, 1986).
그러나 당시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났던 의사들이 보기에 병원을 찾은 여성들은 ‘과도하게’ 털이 빠지는 문제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국홍일은 음모가 많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 여성들이 내원하는 경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보았다. 반면, 국홍일은 음모가 없는 것을 걱정하는 젊은 여성들이 향후 결혼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므로 속히 내원할 것을 권고했다(국홍일, 1989: 259).
그러나 국홍일이 소개하는 여성들의 고민을 들여다보면, 몸에 난 털의 의미에 대한 피부과 의사와 여성 환자들이 생각이 다르다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국홍일이 보기에 여성들의 피부 관리는 결혼을 위한 것이자, 아름다운 엄마, 아내가 되기 위한 실천 그 자체였다. 당시 규범에 걸맞지 않은 여성의 체모는 의학적 개입으로 교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여성들도 이러한 규범을 어느 정도 따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탈모를 숨기기 위해 가발을 착용하거나, 내원을 고민한 흔적은 이러한 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 환자들은 의사가 보기에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신체 문제에도 피부과를 찾았다. 털의 모양이나 형태, 불필요하게 튀어나오는 경우 등을 들어 자신의 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거나, 이를 스스로 해결하다 문제가 생겨서 내원한 경우들이었다.
여성들이 각자 자기 피부 문제에 관해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를 국홍일의 글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어떤 방식의 피부 관리 실천이 있었고, 이것이 어떻게 자기 피부에 대한 관념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앞으로 면밀하게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국홍일의 저술에서 탈모, 피부에 관한 생각의 공백이 있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적인 규범이 의학자의 권위와 의학의 언어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에서 피부에 관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상상과 실천, 서사는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을지 모른다.
나가며
탈모를 경험하는 몸들에 얽힌 젠더 위계는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적인 규범이 탈모 문제에서도 재생산되고 있었다. 탈모는 주로 남성들이 고통받는 문제로 표상되었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스트레스 속에서 남성들에게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질환이었다. 탈모 치료 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탈모 치료는 의료계의 입장에서 더욱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반면, 의료계에서 여성 탈모는 남성 탈모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로 규정되었다. 의사들은 탈모에 의한 스트레스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크고, 이런 차이는 탈모 증세와 정신건강의 악화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피부과학 관련 논의에서도 여성들의 피부 문제는 남성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성들의 피부가 더욱 관리하기 까다로우면서도, 남성들에게 아름답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20세기 중반 의료계에서 탈모 문제를 규정하는 방식은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을 모두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 만드는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몸 사이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자기 머리를 고민하고, 이를 나름대로 관리하려는 실천은 자기 몸에 스며들어 있는 여러 규범을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가 정상성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다면, 탈모를 고민하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실천들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탈모와 피부의 문제를 이성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만 해석하는 방식은 탈모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탈모에 관한 다른 상상과 논의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이 탈모를 이해하는 대안적인 서사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피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부를 위해 어떤 실천을 하는지 사료들 속에서 포착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문제가 있는 관념이나 인식을 바꾸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영문학자 제넷 윈터슨(Jeanette Winterson)이 “우리가 소신 있는 논의를 하면 언제나 틈과 공백이 생기”고 언젠가 이런 논의가 “누군가에 의해 계속되고, 다시 쓰이게” 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쓴다고 말했다(Winterson, 2011: 8). 탈모에 관한 논의, 우리들의 피부 경험에 관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아직 틈새가 많은 이 글이 필자와 독자 중 누구에게라도 몸에 대한 사유를 넓히는 통로가 되어, 아직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는 피부 경험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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