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감각과 상상
가속기 감각하기: 현장연구자의 민족지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김연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yeonwha@snu.ac.kr
깜깜한 우주에서 별들을 반짝이게 하는 빛. 빛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물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불을 발견 혹은 발명한 인간은 빛의 세기와 파장을 제어하여 더 미세한 세계까지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개발하였다. 어떤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곧 빛의 개발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더 작은 구조를 보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광학 장치가 작은 돋보기에서 시작해 현미경을 거쳐 가속기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거대해졌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방사광 가속기다. 방사광 가속기는 전자를 가속시켜 매우 높은 에너지를 지니게 한 후, 이 전자가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거나 진동하며 방출하는 고에너지 광자(방사광)을 실험에 사용한다. 이러한 고에너지 빛은 물질의 미세한 구조를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가 되지만, 동시에 이온화 방사선에 의한 피폭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가속기연구소에서는 방사선 안전을 정교하게 관리한다. 연구소 내부는 방사선 세기에 따라 구역이 구분되고, 구역마다 허용 선량 기준과 출입 조건이 달라진다. 연구자는 가속기에 들어가기 전 방사선 안전 교육을 이수하고 안전 지침을 숙지해야 하며, 실험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개인선량계를 상시 착용하여 자신의 피폭량을 기록·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내가 읽어낸 ‘포항가속기연구소 방사선안전교육’ 동영상의 서사이다. 동영상 시청을 마치자, 시험 응시 안내 화면이 나타났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서사였는데, 시험 문제는 가혹했다.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은 문제들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구글 창을 열었다. 문제의 첫 단어만 입력했을 뿐인데도 나머지 문장이 자동 완성되었다. 이 시험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시험 문제와 답을 정리해 둔 페이지를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몇 개의 링크를 클릭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사이트는 없었다. 대신 검색으로 나온 사이트의 내용을 읽으며 두 번째 학습을 하고 문제를 풀었다. 90점! 으쓱! 역시 예습, 복습을 철저히. 방사광 이용자 방사선안전교육을 마치고 다소 얼레 벌레였지만 무사히 ‘개인선량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식으로 포항가속기연구소 출입이 가능해진 것이다.[1] 그런데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방사선 피폭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안전을 위해 실험 중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동영상 시청만으로 확실하게 알기가 어려웠다. 동영상은 ‘허치(hutch)’ 출입 방식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보는 내내 나는 도대체 ‘허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집중할 수가 없었다.[2] 게다가 비상시 대피경로를 보여주었음에도, 현장에 가본 적이 없어 쉽게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나는 안전하게 가속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무엇보다 이런 상태로 가속기에서 현장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내가 거대한 과학 연구 장치인 가속기를 현장에서 경험하며 느낀 다양한 감각에 대해 다룬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가속기를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연구 수행을 목적으로 실험 지역까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4월 초 이용자를 위한 방사선 안전 교육으로 시작해 4월 말 빔타임이 끝날 때까지,[3] 가속기라는 거대한 실험 장치는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그 한 달 동안 나의 시간과 신체는 온전히 빔타임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무엇도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가속기에 대한 나의 감각은 끝없이 변했고, 때로는 웃고 울기도 했다. 특히 나는 예상치 못한 당혹감을 여러 차례 마주했는데, 이는 아마도 가속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내 확신이 무너지는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경험을 풀어내며, 현장연구자가 어떻게 거대하고 복잡한 연구 장치와 조우하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실험실 일상에서조차 멀리 떨어진 특수 실험 공간에서, 현장연구자가 거대한 과학기술적 도구이자 장소를 어떻게 감각하고 경험하는지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서술이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가속기 내부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위해 대학의 한 화학과 실험실에서 참여관찰에 기반한 실험실 연구(lab studies)를 수행하고 있다. 실험실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라투르(Bruno Latour)와 울가(Steve Woolgar)의 『실험실 생활』은 실험실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된 기입 장치(inscription device)로 규정하고, 배치가 만들어내는 행위의 연쇄를 통해 자연이 기호로 번역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Latour & Woolgar, 1986). 이들의 분석은 실험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지만, 다른 학자들이 지적했듯이(Doing 2009; Sormani 2014; Traweek 1988) 특정한 배치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구체화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아, 과학자가 연구를 진행하며 장비와 관계 맺는 과정을 통해 배치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구성되는지 탐구하고 있다. 과학 연구 실천 속 인간-기계의 관계 맺기라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실험실에 들어간 나는, 어느 순간 연구 참여자들이[4] 직면한 또 다른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5] 내가 있는 실험실 현장은 질량분석기를 주요 도구로 삼아 분자의 구조를 탐구하는 곳이다. 질량분석기는 이온화된 분자의 질량 대 전하비(m/z)를 측정하는 장치로, 비행시간형 질량분석기를 예로 들자면, 분석 물질을 이온화시킨 후 이온화된 분자에 전압을 걸어 이들이 검출기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분석 물질의 질량을 계산한다. 문제는 실험 장치에 물질이 주입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물질이 장비에 주입되어 이온화되는 과정에서 상변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나기 때문이다.[6] 질량분석을 이용한 분자 구조 분석 연구는 액체 혹은 고체 상태의 분자가 기체 상태로 이온화되면서 본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는데, 이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 이 때문에 화학자들은 질량분석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전자 분무 이온화(Electrospray Ionization, ESI) 과정에서 분자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있는 실험실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순간의 미세한 구조를 볼 수 있는 도구인 방사광을 활용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가속기 실험은 제한된 빔타임 동안만 가능하므로 이를 위해 평소에는 실험실에 장치를 구축하고 실험 조건을 잡은 후, 실험실에서 준비된 장비와 조건을 가속기 현장으로 옮겨와야 했다. 이 ‘실험실 이동’의 과정은 내가 실험실 안에서 보던 인간-기계 관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다. 이 지점에서 현지의 연구 참여자들의 문제의식과 나의 문제의식이 교차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연구 책임자와 공동 연구자들의 동의를 얻어 나의 참여관찰을 가속기 실험으로 확장했고, 가속기 출입을 위해 필수적인 방사선 안전교육을 이수한 후 마침내 가속기라는 현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지난 두 달간 실험실에 세팅했던 실험 장치들을 해체해서 차로 옮겨 싣고 가속기로 향했다. 나도 파손의 위험이 있는 유리로 된 장치를 손에 소중하게 들고 뒷좌석에 앉았다. 날씨는 너무 좋았고, 파란 하늘에 흰색 구름은 예뻤다. 그 아래 초록 나무들이 우거진 길을 지나 포항가속기연구소 입구에 다다랐다, 차단기 옆에 차를 세우고, 방문 차량 등록을 하고, 바로 옆 건물에 들어가 개인선량계를 받아 각자 몸에 걸었다. 목에 걸 수 있는 빨간 줄 끝에 하얀색 출입증과 검정색 상자가 달려 있었다. ‘음, 이게 두잉(Doing, 2009)이 말했던 그 선량계로군.’ 가속기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면서 실험실 민족지를 수행한 두잉은 가속기에 처음 들어갔을 때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가속기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그의 민족지가 계속 떠올랐다. 다만, 다소 낯선 감각으로 기록한 그와 다르게 나는 좀 더 들떠 있었다. 나와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연구 참여자들은 담담해 보인달까, 일상적으로 보인달까, 혹은 별다른 감흥 없어 보인달까 한 상태였다. 아니, 사실 그들이 어떤 기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신나 있었다. 포항 가속기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실험공간에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속기 연구소 입구의 차단봉이 열리고 나와 연구 참여자와 실험 장치가 타고 있는 차가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과 과학관이 있는 연구소 방문자 센터를 지나, 3세대 가속기 뒤를 돌고 기초과학연구원을 지나서 산 옆길을 따라 올라가니 PAL-XFEL이라고 크게 적혀 있는 커다란 자줏빛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장치들을 하나씩 내렸다. 건물의 현관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내부가 보였는데, 현관 앞에 서니 유리문이 저절로 열렸다. 오오! 왠지 환영받는 느낌. 들떠 있는 나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다른 연구 참여자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로비는 그냥 텅 빈 공간이었는데 건물 현관에서 실험공간으로 가는 다른 유리문 사이에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에 실린 여러 논문이 담긴 포스터가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가속기에서 수행한 연구들이었다. 오오! 빛나는 저널에 실린 연구들. 이곳에서 실험하면 바로바로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 그 사이를 지나 이번엔 개인선량계를 찍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부터는 출입이 인가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실험 구역이다. 그 안쪽에는 동영상에서 본 ‘허치’라는 공간이 있었다. 자주빛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한 철강 구조로 구축된 허치 내부를 가득 채운 은색 덩이들과 검정 전선들이 시각적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조 시스템이 내는 바람 소리로 인해 나의 귀도 바빠졌다. 이 구역은 빔라인이 있어 실제 실험이 수행되는 공간으로 그 안에는 다양한 실험 장치들이 있었다. 입구 반대편 벽에서 튀어나온 은색 관이 허치를 가로지르며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 우리의 실험 장치를 세팅해야 할 커다란 체임버가 있었다. 아마도 은색 관이 바로 빔이 지나가는 곳인 듯했다. 온갖 실험 장비들은 대부분 은박지에 싸여 있었다. “알루미늄 포일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라던 두잉의 말이 떠올랐다(Doing 2009: 46). 오오! 나는 여전히 너무 신났고, 심지어 내 목에 걸린 개인선량계의 빨간 줄도 멋있었고, 그 선량계를 차고 허치 안에 있는 나마저도 멋졌다. 그래서 허치를 배경으로 선량계 사진(셀카는 아니고!)을 찍어 SNS에 올렸다. 결국 신나는 기분을 누르지 못하고 옆에 있던 연구 참여자에게 말을 걸었다.[7] “와, 저 지금 너무 신나서 페북에도 자랑했잖아요.” “네? 페북이요?” 당혹스러운 표정이 보였다. 아뿔싸. 하… 이런 얘긴 하지 말아야 했는데…. 연구 참여자끼리 대화가 오갔다. 다들 페북 아이디는 있지만 거의 접속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비밀번호도 기억이 안 난다는 둥, 해킹당해서 이제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둥…. 그렇지, 페북은 40대 이상의 공간이었지…. 흑흑. “저, 인스타도 해요….” 그들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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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에 들어가면서 나는 왜 그렇게 신났을까. 우선은 평소에 가지 못하는 곳에 가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또한 들어가기 위한 여러 절차가 나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다양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가속기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황이 나를 흥분시켰던 것 같다. 나는 가속기를 글로만 접했다. 라투르에서 시작된 실험실 연구라는 STS의 한 장르는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읽은 트라윅(Sharon Traweek), 노르 세티나(Karin Knorr Cetina), 두잉(Park Doing)이 쓴 많은 실험실 연구의 배경이 가속기였다(가속기에 관한 과학사 연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연구자들이 가속기에서 이렇게 멋진 연구를 해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직접 가속기 현장을 연구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너무 연구가 많이 되어 있는, 그러니까 인류학으로 치자면 인도네시아의 ‘발리’ 같은 현장이었달까. 나에게 가속기는 연구 현장이라기보다는 과학학자들이 다녀간 유적지 같은 곳이었다. 비록 그들의 연구한 곳이 포항 가속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가속기 입구에서, 로비에서, 허치에서, 과학기술학자들이 묘사한 실천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속기는 과학기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나에게는 유적지 같은 곳이었지만, 나의 과학자 정체성은 이를 또 다르게 받아들였다. 내가 참여관찰을 온 PAL-XFEL(이하 XFEL로 줄임)은 4세대 가속기에 해당하는 연구 장비로 2011년에 구축 공사에 착수하여 2017년에 이용자 실험을 시작했다.[9] 나에게는 몇 해 전에 비록 외관뿐이었지만 XFEL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의 기억이 꽤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3세대 가속기가 가속된 입자를 둥그런 저장 링에 가두고 입자가 꺾일 때마다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4세대 가속기는 선형으로 전자총(electron gun)이 강한 에너지를 지닌 전자 입자를 방출하고 이를 직선으로 보내면서 가속해 더 강력한 빔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지면에서 수평으로 긴 직선처럼 세워진 XFEL 건물의 흥미로운 특징은 입자가 가속되면서 그 에너지가 커지는 모습을 건물 밖에 형상화해 놓았다는 점이다. 당시 나에게 가속기를 보여준 분은 나를 차의 조수석에 앉히고는 운전해서 XFEL 건물 뒤편으로 들어가셨다. 가속기 주변으로 빙 둘린 도로의 옆에는 산이 있어 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점차 나무는 없어지고, 어느새 길은 언덕 위가 되어 아파트와 다른 건물들이 지면 아래에 펼쳐졌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동동. 포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10] 건물을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머리 위에 “Beam Energy 0.7 GeV(기가 전자볼트)”라는 표지가 보였다. 1 km 정도 되는 직선 도로를 주행하니 머리 위에 나타나는 표지들의 수치가 점차 커지다가 어느새 10.0 GeV가 되고는 이내, “Wavelength 1.0 nm”로 바뀌었다. 곧이어 “Welcome to New Science”라는 표지가 나타났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수치가 변하는 표지판을 계속 보는 것도 마치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재밌었지만, 마지막에 보이는 “New Science”는 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고백하자면 난 좀 과학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당시에도 너무 신나서 이 과정을 타임랩스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어쩔 수 없는 40대, 하지만 내 주변 40대들은 다들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그러니까 가속기는 나에게 첨단 “과학”을 의미하는 무언가였다.
그래도 이때의 신난 나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조금은 과학 팬(fan)에 가까웠던 것 같다. 훨씬 더 과거의 기억을 꺼내보자면, 나에게 가속기는 과학자를 꿈꾸던 고등학생 시절에 처음 아른거리기 시작한 존재였다. 1990년대의 끝자락에 대학생들은 데모하는 존재로 표상되었다.[11] 그러나 대학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더 깊이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잔뜩 지녔던 나는, 그런 이상에 걸맞게 공부를 하는, 더 정확히는 과학을 하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과학자를 장래 희망으로 꼽았던 나는 이 즈음부터 장래 희망을 ‘연구원’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탐색하던 때에 눈에 들어온 “연구 중심 대학”은 대학에서 공부/연구만 하고 싶다는 그 어린 학생의 눈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 대학이 얼마나 연구에 진심인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대학 안에 국내 유일의 가속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와. 이때부터 나의 목표는 포항공과대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가속기는 내게 과학 연구의 진정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가속기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속해 있던 천문 관측 동아리가 종종 가속기에 별을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난 거기에도 안 꼈다(당시에 그곳은 3세대 가속기만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밤에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가속기에 처음 가본 것은 대학원생이 되어서였는데, 그것도 연구하러는 아니었고 가속기 식당이 내가 있던 화학관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밥 먹으러, 그리고 종종 라면 먹으러 가속기에 갔다.[12] 당시에는 가속기 식당에서 오후에 일정 시간 동안 끓인 라면을 팔았는데 취사가 금지된 기숙사에 살던 이들에게 끓인 라면이란 ‘집’의 맛이었다(유사품으로 계란 후라이도 있다). 역설적으로 나는 밥 먹으러 가속기에 자주 가면서도 가속기에 너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까 밥 먹는 것 말고 실험하러 말이다.
학부 졸업 후 내가 대학원으로 진학한 곳은 같은 학교의 단백질 결정학 연구실이었다. 단백질 결정학 연구의 대략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DNA 재조립을 통해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분리 및 정제하여 용액 속의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든 후, 결정에 엑스선을 쬐어 그 산란 패턴을 기반으로 단백질 구조를 풀어낸다. 단백질 분자가 클수록 그 안에 포함된 원자들이 많기 때문에 산란 패턴은 더 복잡해지고 이를 더 “잘 보기” 위해 강한 엑스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단백질 결정학자들은 가속기의 빔라인을 자주 이용한다.[13] 단백질 결정학 연구라고 하면 대체로 엑스선 산란 패턴을 분석하여 구조를 풀어내는 일에 주목한다. 수많은 점으로 표시되는 산란 패턴을 어떻게 저떻게 해서(아주 옛날에는 공식에 넣어서 하나하나 다 풀었다고 하는데, 내가 학생일 때에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요소들을 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지금은 알파폴드가 이 과정을 혁신적으로 줄여준다고 한다) 원래의 데이터와 전혀 다르게, 우리에게 익숙한 리본 구조로 재현하는 그 과정이 단백질 결정학의 핵심적인 실천인 것이다(Myers 2015; Ambrosio & Fisher 2025).[14] 과학자들은 자신이 결정을 얻어 구조를 풀어낸 단백질을 마치 자식에 비유했다. 그러나 단백질이라는 자식을 낳기 위해서는 우선 단백질 결정을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결정이 없다면 해독할 엑스선 산란패턴도 얻을 수 없다.[15]
단백질 결정학 연구실에서 내가 다루던 단백질은 전사 단백질(transcription factor) 중 하나로 DNA 및 RNA와 상호작용을 하며 전사 기작을 조절하는 단백질이었다. 당시 내 연구의 목표는 이 단백질이 단일 사슬 DNA 및 RNA와 결합해 있는 구조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내 지도교수가 이것만 풀면 노벨상을 탈 수 있다고 했을 때 눈치채야 했는데, 실험실에 본격적으로 막 발을 들였던 당시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게다가 이온 채널(ion channel) 단백질의 구조를 풀어 2003년 노벨상을 받은 로더릭 맥키넌(Roderick MacKinnon)이 학교에 방문해 기념 강연까지 했던 터라, 나도 그를 따라 최고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DNA, RNA와의 결합시키기는커녕, 단백질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결정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노벨상 받을 연구를 나만 하고 있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결정 구조가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실험실의 다른 사람들은 결정을 만들어서 가속기에 들고 가는데, 나는 들고 갈 결정이 없었다. 가속기의 빔타임(beamtime)은 아주 짧은 시간만 주어지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빔타임이 끝날 때까지 밤을 새서 실험을 마쳐야 했다. 가속기에 다녀오면 다들 너무 피곤해했지만, 나도 그 피곤함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내 단백질로. 결국 난 가속기에 한 번도 못 들어가 보고 졸업을 했다. 그런 내게 가속기는 “잘 된” 과학 연구의 상징이었다.
나의 정체성은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속 뒤얽힌 채로 존재한다. 지금 나는 과학자가 아닌 과학기술학자로 가속기에 들어왔지만 가속기가 나에게 단지 과학기술학적 유적지로만 감각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가속기는 첨단 과학의 상징이자, 과학 연구의 중심이고, 잘 된 과학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훌륭한 민족지가 쓰인 곳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신나도 보통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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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참여자들은 실험실에서 가져온 장비들을 분주하게 허치 안으로 옮겼다. 고양이 손으로라도 돕는다는 심정으로 나도 같이 도왔다.[16] 그리고 그들은 실험에 사용할 체임버의 나사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약 0.25m²정도 크기의 체임버에는 전면, 측면, 윗면에 크고 작은 동그란 구멍이 있었고, 각각의 구멍은 크기에 맞게 스테인리스 원판이 덧대진 채로 그 주변이 나사로 조여져서 고정되어 있었다. 원판 하나당 적게는 6개에서 많게는 12개의 나사가 있었고 당장 풀어야 할 원판만 다섯 개가 넘었다. 말은 거의 나누지 않았다. 허치 내에는 천정의 거대한 공조 시설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가득했고, 체임버 주변에 보라색 장갑[17] 을 낀 채로 스패너와 렌치를 든 손들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끼릭끼릭 소리를 더하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들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체임버에 구멍이 생겼다. 각 구멍에 진공펌프, 게이트, 압력계, T자 관, 유리창(!) 등 실험실에서 가져온 장비들이 연결되고 다시 나사로 고정되었다.
가속기는 그 크기가 압도적이지만, 너무 큰 크기 때문인지 실제로 건물을 마주했을 때는 그렇게 감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허치 내부에서 만난 각종 실험 장비들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속기는 내게 일종의 ‘스펙터클’로 다가왔다. 나를 압도한 것은 거대한 장비 자체라기보다 오히려 가속기 내부를 채운 수많은 관과 케이블, 나사들이었다. 계속해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제법 크게 내고 있는 천장 위의 거대한 관, 그 옆을 따라 질서 있게 배치된 굵은 전선 다발들. 천정을 가로지르는 전선 다발들은 중간중간 서로 모여 아래쪽으로 내려와 장비들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보다 작은 질소 가스 등을 공급하는 투명한 관들이 전선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장비들과 장치들을 연결해 주는 수많은 나사도 눈에 들어왔다. 분명 그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나사들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보라색 손들을 보고 나니, 이제 손이 없어도 나사들이 보였다. 거대한 장비들이 허치의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어 있었다. 전선과 관, 나사 사이를 바삐 움직이는 보라색 손들이 내게는 현대 예술로 보였다. 어느새 가속기는 미술관이자 무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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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가속기로 옮겨온 세팅에서 실험이 잘되지 않았다. 실험이라고 해봐야 아직 빔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빔타임 기간동안 찍을 샘플을 분무하는 것인데 스프레이부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가속기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질량분석기에서 전자 분무 이온화(ESI) 과정이 진행될 때 벌어지는 분자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ESI 방식의 스프레이를 체임버에서 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허치 안에 있는 체임버 내부에 시료 주입 장치를 설치하고 그 끝에 지름 수 마이크로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금박 코팅된 모세관(나노팁)을 설치하고 고전압을 걸어주면 그 에너지로 인해 샘플이 이온화되면서 모세관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렇게 분사된 ‘드랍릿(droplet, 액적)’은 공기 중에서 기화하면서 용매가 날아가고 목표 분자만이 기체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18] 이때 이 드랍릿에 강한 엑스선(빔)을 가하여 드랍릿의 크기와 내부의 분자 상태를 관찰한다는 것이 본 실험의 목표다.
그러나 가속기에서 모든 상태가 질량분석기의 ESI와 동일하게 모사되지는 못했다. 우선 질량분석기의 ESI 파트는 상압 상태로 있지만, 가속기 실험에서 분사가 진행되는 체임버는 진공 상태여야 했다. 상압이란 공기에 노출되어 기체 분자들이 1기압 상태로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실시된 실험에서 공기 중 기체 분자들이 엑스선 산란을 방해한다는 것이 확인되자 연구팀은 실험 장치를 체임버에 넣어 기체 분자를 모두 뺀 상태, 즉 진공 상태를 만들어야 했다.[19] 문제는 바로 이 진공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분사되어야 할 샘플 용액이 팁 안에서 자꾸 얼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체임버 내부에 소형 레이저를 설치하고 분사가 일어나는 팁 끝에 레이저를 쏘여주었다. 가속기 실험은 일정 시간 동안 샘플을 분사하고 분사된 드랍릿에 빔을 조사하면서 그 산란 데이터를 얻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빔이 조사되는 동안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실험자들은 모두 허치에서 나와 통제실에서 컴퓨터를 통해 팁을 움직여 그 위치를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드랍릿이 빔에 맞는 위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샘플 분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샘플 분사가 지속되지 않는 이유도 다양했다. 우선 용액은 진공 상태에서 너무 쉽게 얼었고, 용액이 얼 때마다 약한 나노팁은 깨져서 분사가 되지 않았다. 레이저로 팁 끝을 쏴주어도 종종 용액은 얼었다. 가끔 팁 끝을 쏴주는 레이저로 인해 팁이 깨질 때도 있었다. 때로는 분사를 위해 걸어주는 고전압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높은 전압으로 인해 금박 코팅이 된 팁에
순간 고전류가 흐르면서 깨지기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될 때조차 분사가 멈추는 경우도 있었다. 실험실에서는 3시간 이상씩 분사되었으나 가속기에서는 길어야 30분을 채 못 넘겼다. 분사가 멈출 때마다 체임버 내 진공을 ‘깨고’ 체임버를 열어 팁을 갈거나 레이저를 조절하거나 세팅을 다시 확인하고 체임버 내 진공을 다시 잡고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연구 참여자들의 분위기는 안 좋아졌고, 나의 신남은 이내 식어버렸다. 실험실에서의 조건이 구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술 작품으로서 가속기는 사라지고 실험의 지난한 현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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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구자에게 좋은 현장이란 무엇일까?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계속해서 방해물이 나타나는 현장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쓸 거리가 더 풍부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실험 조건이 쉽게 잡히지 않는 가속기 현장에서의 상황은 나에게 그랬다. 그러나 내 연구 참여자들은 그 현장을 어떻게 감각할까? 허치 내 공기가 무거워지고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았다. 그간 랩미팅에서 전해 들었던 가속기 실험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잘되지 않음”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실험이었다. 일 년에 최대 두 번 기회가 주어지는 빔타임을 통해 그간 수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적어도 가속기 밖 실험실에 있을 때는 샘플 스프레이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정도까지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속기에서도 실험이 잘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실험실에서는 잘 되는데 왜 꼭 가속기에만 오면 이러나” 한 연구참여자가 말했다. 스프레이가 잘되지 않는 게,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가속기에 수맥이라도 흐르는 걸까요?” 나 때문은 아니길 바라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내가 수맥 같았다.
실험실 참여관찰에서 어려운 점은 실험할 때 연구 참여자들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은 대부분 혼자서 진행한다. 간혹 두 명이 함께 실험할 때도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서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주고받는 대화가 많지 않다. 가속기 실험은 더 했다. 가속기에 들어와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나와 달리, 이들은 허치에 들어서자마자 각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았다. 한 사람은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은 다시 연결할 크기가 맞는 나사를 찾아왔고, 또 다른 사람은 체임버에 연결할 장치를 허치 옆 창고에서 찾아왔다. 가끔 대화가 있어도 가속기의 공조기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다들 목소리는 왜 이리 작은지). 그래서 나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종종 물어봐야 했는데, 분위기가 안 좋으니 이제 질문도 하기 어려워졌다.
“혹시 참여 관찰 연구하실 때 현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나요?” 한 연구 참여자가 내게 물었다. 아니, 그런 기준은 없는데 대체 왜…? 아…, 스프레이가 잘 되게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나도 너무 그러고 싶은데. 내가 찾은 한 가지 방안은 그들이 실험실에서 했던 실천들을 하나하나 다시 읊어주는 것이었다. “실험실에서는 이게 이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부분이 달라진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하나하나 체크하다가 뭔가 수정할 만한 사항을 그들이 찾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실험실과 다른 사정으로(가령 체임버의 크기) 다르게 적용해야 했거나, 중요하지 않아서 생략해도 되는 부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할 수 없이 그나마 나에게 할당된 과업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빔타임 준비 과정부터 매일의 작업 상황을 로그북에 기록하는데, 장치가 설치된 사진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눈치껏 알아서, 내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가속기에서 식당으로 이동할 때면 내 차로 운전해서 이동을 도왔고, 연구 참여자들이 가속기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같이 있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현장 연구자의 몫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돌봐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이 자꾸 나에게 왔다. 내가 관련 기술이 없는 게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실 뭘 해도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듯했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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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갑자기 모든 장비를 지닌 채 외딴 열대 해변에 홀로 내려지고, 근처에는 원주민 마을이 있으며, 당신을 데려다준 보트나 작은 배는 시야에서 멀어지며 떠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Malinowski 1978: 3).”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의 이 유명한 문장은 민족지학자(혹은 인류학자 혹은 현장 연구자)를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존재로 가정한다. 참여관찰의 기본으로 제시되는 ‘모든 것을 낯설게 보기’라는 문구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내 경우 가속기는 이미 내게 너무 익숙했던 곳이었다. 나는 가속기를 이미 과학기술학자들의 글을 통해서, 내가 참여 관찰하던 실험실의 랩미팅 속 논의를 통해서, 그리고 내 삶의 궤적 속에서 경험해 봤다. 그럼에도 연구 현장으로 처음 대면한 가속기는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밥 먹으러 여러 번 들어가 본 곳이었지만, 실험하러 가는 길은 시작 절차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나는 가속기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에 도달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말리노프스키는 마치 혼자 낯선 곳에 떨어진 것처럼 묘사했지만 그가 도달한 서태평양의 섬에는 이미 원주민과 교역하던 수많은 백인(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민족지 연구를 하기 위해 그곳에 머무는 동안 원주민뿐만 아니라 현지의 백인들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민족지에는 그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말리노프스키가 자신의 민족지에서 밝히지 않았던 그 존재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에게는 가속기라는 낯선 현장에서 나의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준 내 연구 참여자들이 있었고, 거기에 추가로 그들이 가져온, 실험실에서 자주 봤던 장비들이 있었다. 비록 실험실에서는 잘 되던 스프레이가 가속기에만 들어가면 잘 작동하지 않는 등 그 장비들은 장소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지만, 그러한 다른 양상조차 나에게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비인간들을 포함하여 이 수많은 연구 참여자와 함께 나는 가속기를, 실험실을, 현장을 감각하며 민족지를 작성한다. 가속기와 얽힌 나의 기억, 나의 다양한 정체성, 그에 따른 기대와 실망, 들뜸과 미안함이라는 나의 감각들도 이 현장연구에 함께하고 있다. 이 모두를 포함하는 나의 길잡이들을, 연구 참여자들을 계속해서 인식하며 내 나름의 돌봄 실천을 수행하는 것이 나의 현장 연구 방법이자 나의 과학기술학 하기(doing STS) 방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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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 P. (2009), Velvet Revolution at the Synchrotron: Biology, Physics, and Change in Science, Cambridge, MA: The MIT Press.
Latour, B. & Woolgar, S. (1986), Laboratory Life: The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2nd e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Malinowski, B. (1978), Argonauts of the Western Pacific: An Account of Native Enterprise and Adventure in the Archipelagoes of Melanesian New Guinea, London: Routledge.
Myers, N. (2015), Rendering Life Moleculark: Models, Modelers, and Excitable Matter,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Sormani, P. (2014), Respectifying Lab Ethnography: An Ethnomethodological Study of Experimental Physics, Surrey, UK: Ashgate.
Traweek, S. (1988), Beamtimes and Lifetimes: The World of High Energy Physicists, Boston, MA: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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