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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카이브의 끈: 인공위성연구센터 우리별 1호 사료 분류 및 해제 작업 후기 (박예슬)

일반논문


보이지 않는 아카이브의 끈
: 인공위성연구센터 우리별 1호 사료 분류 및 해제 작업 후기* 


박예슬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sru.hps@snu.ac.kr


들어가며

대학원 수업 기말페이퍼로 소논문을 작성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머리를 쥐어짜서 수업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면서도 내 연구 관심사를 벗어나지 않는 논문 주제를 찾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사편찬위원회나 국가기록원과 같이 사료를 관리하는 기관 사이트에 들어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사료가 충분한지 살펴보고 필요한 자료의 사본을 몇 개 신청한다. 1~2주가 지나면 A4 용지에 복사된 사료 뭉치를 택배로 받아볼 수 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내가 연구를 위해 활용한 사료들은 주로 깨끗한 A4 용지에 복사된 복사본이거나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스캔 파일이었다.

하지만 원문 복사를 해주지 않는 경우 해당 기관을 직접 방문해서 사료를 열람해야 했는데, 그때 마주한 사료는 색이 누렇게 바랜 종이들이 켜켜이 쌓인 사료철이었다. 여태까지 깔끔한 복사본만을 보다가 한 장 한 장 잘 넘겨지지 않는 오래된 종이를 만지게 되니 마치 내가 사료를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는 ‘멋진’ 역사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이런 자료들은 어디서 수집되고 어떤 방식으로 정리된 것일까? 과학기술 관련 사료가 수집 및 처리되어 아카이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면 사료가 지닌 생생한 현장감을 연구에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아카이브 방문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던 차, 올해 초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사료관(이하 과천사료관)과 함께 과학기술 사료 정리 작업을 수행할 기회가 생겼고, 이 글은 아카이브를 방문하여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류 및 해제했던 과정 전반을 담았다. 사료 정리 작업 대상은 1991~1992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개발한 ‘우리별 1호’ 관련 사료로 오늘날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개발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과천사료관은 작년 말부터 해당 자료의 목록을 만들고 실물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진행했고, 현재 디지털화가 완료된 약 223건의 문서자료와 약 3,300건의 시청각 자료는 과천사료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사료 수집하기

사료 정리 대상이었던 우리별 1호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1991년부터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최순달 소장이 주도한 인공위성 기술이전 및 개발사업의 결과물이었다. 1989년 체신부가 1990년대 방송위성 개발을 목표로 한 방송통신위성기술 종합개발방안을 마련하면서부터 인공위성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당시 체신부의 최순달과 과학기술처,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위성통신기술 국산화를 목표로 한 우리별 1호 개발사업이 착수됐다. 인공위성 개발을 위해 1989년 9월 한국과학기술대학(KIT) 1기를 졸업한 다섯 명의 대학원생은 영국 서레이(Surrey) 대학 위성통신공학 대학원 1년 과정을 이수했다. 이들은 유학 동안 서레이 대학에서 개발한 아마추어 인공위성 UoSAT-5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위성개발 지식을 습득했고, 이때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약 1년 만에 우리별 1호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 여름에 완성된 우리별 1호는 그해 8월 기아나 쿠루 우주발사장에 위치한 아리안스페이스사의 V52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고도 1,300km 상공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우리별 1호는 적도면과 66° 기울기로 원 궤도에 가깝게 공전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110분이 걸렸으며, 하루에 일곱 번 한반도 상공을 지나갔다. 인공위성연구센터 개발팀은 위성 수명을 약 5년으로 예측했으나, 1997년 임무 종료 후에도 계속 작동하다가 2004년 말 교신을 종료했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아카이브를 방문하기 전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은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었다. 우리별 1호를 분석한 연구논문이 많이 없는 상황에서 구글링을 통해 신문 기사, 기관 사이트, 블로그, 유튜브, 위키피디아 등 여러 사이트를 드나들었고, 사업개요, 주요 행위자, 사업 기간 등 우리별 1호 개발사업의 기초적인 정보를 습득했다.[1] 

사전 조사를 하면서 아카이브를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평소에도 ‘기술이전’, ‘국산화’, ‘유학생 파견’과 같은 소재에 관심이 많은지라 나에게 딱 맞는 연구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에 파편적으로 있는 정보보다 더 유의미한 자료를 많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특히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이었던 최순달이 사업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하기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어떤 사료를 볼 수 있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림 1. 인공위성연구센터 아카이브에서 대여할 사료를 구분하는 작업 (출처: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사료관)


아침 일찍 서울을 빠져나와 2시간에 걸쳐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 도착했다. 아카이브에 들어가기 위해 보안 카드키를 두 번이나 찍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하로 내려갔다. 큰 철문을 여니 예전에 연구실로 사용했던 것 같은 아주 큰 방이 두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책장에 꽂힌 무수한 사료박스와 사료철, 오래돼 보이는 철제 캐비닛이 있었다. 캐비닛에는 사업별로 라벨링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별 1호를 뜻하는 ‘KITSAT-1’이나 서레이 대학 인공위성 모델을 의미하는 ‘UoSAT-4’, ‘UoSAT-5’가 쓰인 라벨이 붙어있었다. ‘KITSAT-1’이 적힌 캐비닛의 사료박스만 가져올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UoSAT-5’ 캐비닛에 우리별 1호 사료가 섞여 있거나, 라벨링이 없는 책장 사이사이에 우리별 1호와 관련된 문서철이 꽂혀 있는 경우도 빈번했다.

점심부터 우리는 먼지 쌓인 지하실에서 우리별 1호 자료만을 선별해야 했다. 이때 필요했던 건 열심히 조사했던 우리별 1호에 대한 기본 정보가 아니었다. 사료철 제목만 보고 필요한 사료인지 판별할 수 있는 순발력, 단단하게 잠긴 캐비닛을 펜치로 뜯을 수 있는 악력, 사료더미를 지하에서 1층으로 옮길 수 있는 하체 근력, 먼지가 가득한 지하실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폐활량이 필요했다. 우리는 우리별 1호와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보이는 사료들이면 일단 박스에 담고 카트에 실었다. 나중에 센터에 사료를 반납해야 했기 때문에 사료철의 원래 위치를 기입하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중요한 사료와 그렇지 못한 사료를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과천으로 다시 올라갈 시간을 고려하면 그 정도의 여유는 있지 않았다.


그림 2. 인공위성연구센터 아카이브에서 대여한 사료 (출처: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사료관)


사료 정리하기

과천으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디지털화하는 일을 진행했는데, 이는 작업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당히 지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사료박스에 있는 사료철을 순서대로 하나씩 꺼낸 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철 제목과 작성일자, 작성자, 목차 등을 엑셀에 기입한다. 그 다음 사료철을 하나씩 읽고 어떤 내용인지 해제를 적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별 1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료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료이고, 그렇지 않은지 판별할 감각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일단 가져온 사료를 하나하나 다 읽어야 했다. 혹시라도 중요한 정보를 놓칠까 우려되어 사료를 선별적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작업을 하는 동안 필요했던 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숫자와 계산식이 적힌, 사료적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료철을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는 인내심과 지구력이었다. 

가져온 사료박스를 1/3 정도 읽고 스캔한 시점에서 과천사료관 선생님과 나는 작업 중인 이 자료들을 추후 열람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범주화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자료를 분류할 기준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열람자가 우리별 1호를 잘 모르더라도 사료 목록을 봤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싶었지만, 나부터도 각 사료들의 가치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러한 기준을 자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일반적인 도서관 분류체계를 사용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그렇게 되면 인공위성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사료를 분별해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읽게 된 한 문서는 문제 해결과 추후 사료 정리 작업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회의록 (1992~1993)” 문서철에서 발견한 이 문서는 ‘UoSAT-4’ 캐비닛에서 발견했는데, 사실 이 문서철은 서레이 대학에서 진행한 UoSAT-4 인공위성 개발 사업이 아닌 1992년 한국에서 진행된 우리별 2호 개발 사업의 회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그림 3 참고). 이 사업도 최순달 소장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1989~1990년 서레이 대학으로 유학 간 연구원들은 사업의 세부 분야를 책임졌다. 이 조직도에 명시된 사업 하위 분과는 주로 위성체 제작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우리는 이 기준으로 사료를 분류하기로 했다. 열람자가 조직도에 명시된 열 가지 분류(“Mechanical Systems”에서부터 “Documentation”)만 이해하고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2] 


그림 3. 우리별 2호(KITSAT-B) 개발 프로젝트 조직도 (인공위성연구센터, n.d.: 23)


무엇보다 이 문서를 읽고 난 뒤, 사료 분류 작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조직도의 체계를 기준으로 사료를 분류할 수 있게 되면서, 여태까지 동등하게 취급되던 사료의 정보들을 이 기준을 중심으로 경중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여태까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사료도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고, 파편적으로 이해되던 정보들을 짜임새 있게 정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 “태양 센서(Sun Sensor)”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료를 읽으면 단순히 태양을 감지하는 센서를 다루는 사료라고 이해했다면, 이제는 이것이 “위성체 제어 시스템(ADCS/SAFETY SYSTEM)”의 일부이자, 위성체의 자세를 제어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부품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알 수 없는 언어로 이해되던 축약어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각 사료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고, 덕분에 남은 사료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분류할 수 있었다.


"아카이브의 선물"

역사학자 아를레트 파르주는 자신의 책 『아카이브 취향』에서 아카이브 정리를 하다 보면 아카이브 작업의 노선을 완전히 바꾸는 ‘아카이브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루한 사료 정리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않던 곳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찾아낸다는 것이다(아를레트 파르주, 2020: 84-89). 나 역시 사료를 정리하는 무료한 작업을 견디게 해줄 몇몇 흥미로운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2년 8월 가수 김승기가 발매한 〈HAM〉과 우리별 1호의 보이지 않았던 연결고리가 그러한 자료 중 하나였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아카이브 ‘UoSAT-4’ 캐비닛에 있었던 한 문서철에는 1993년 우리별 1호 운영 상황과 우리별 2호 개발 및 발사계획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다. 이 보고서는 우리별 1호의 정보 축적 및 송신 기능을 설명하면서 “아마추어 개방과 그 운용 실적”을 소개했다. 1993년 1월 15일, 우리별 1호가 전자 우편 서비스를 개방했는데, 취미활동으로 무선 통신을 즐기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우리별 1호를 이용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설명과 함께 “1. WA2N 341 Files 2377273 Bytes user” 같은 단어가 몇 페이지 넘도록 나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보였지만, 아마추어 무선사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난 뒤, 위와 같은 내용이 1990년대 활발하게 이뤄졌던 아마추어 무선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해방 이후 성장한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우리별 1호를 매개로 아마추어 무선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록에 나온 “1. WA2N”은 우리별 1호를 가장 많이 사용한 사용자의 ID였고, 341과 2377273은 각각 그가 공유한 파일 수와 파일 용량을 의미했다.[3] 


그림 4. 우리별 1호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햄 리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1993: 7-17; 일부 내용을 필자가 편집.)


우리별 1호는 1990년대 아마추어 무선 문화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 김승기의 〈HAM〉은 우리별 1호 발사와 무선통신문화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CHANEL NO.25》의 두 번째 수록곡 〈HAM〉은 멀리 떨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으로 상대방과 연결되고 싶다는 화자의 마음을 고백한 노래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사랑의 끈”은 무선 통신을 의미한다. 노래 초반부에 들리는 라디오 주파수 소리와 노래 중간에 삽입되는 모스 부호 입력 소리는 이러한 무선 통신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특히나 이 노래가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한 달 뒤인 1992년 9월에 발매됐다는 점은 우리별 1호의 발사 및 운용은 한국 최초 인공위성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의미 외에도 1990년대 젊은 세대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몇몇 아마추어 햄들은 한반도 위성 사진을 다운 받거나 우리별 1호를 사용하는 외국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등, 우리별 1호를 매개로 그들만의 통신 문화를 즐겼다. 감미로운 김승기 노래는 이러한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통신 문화, 그리고 그들의 대학 시절을 상상하게 만드는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우리별 1호 운영 상황 보고서를 단순히 위성 상황을 확인하는 밋밋한 보고서로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1990년대 우주 기술 개발과 통신 문화의 접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아마추어 무선 활동에 대한 정보는 단순히 흥미로만 끝나지 않고 남아있는 사료를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위성체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별 1호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을 항상 두 개씩 배치하는 설계로 구성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주 환경에서 위성의 일부가 고장 났을 때 그 역할을 대신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설계로, 위성체 수신부는 이 기능을 활용하여 인공위성연구센터와 아마추어 무선 수신 주파수를 구분했다. Rx 0 수신부는 감도를 낮게 설정하여 송신기를 가진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만 정보를 송신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Rx 1, Rx 2는 일반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위한 주파수로 구성했다. 이런 정보는 사료 정리 작업 전반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었는데, 아마추어 무선통신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서레이 대학 유학생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난 사진이나 연구원 중 한 명이 《MBC 뉴스》에 나와 젊은 손석희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면서 생경함을 느끼기도 하고, 이들이 소장이자 자신의 지도교수인 최순달에게 매주 주간 보고를 했던 서신과 정리표, 어질러진 책상 사진을 보면서 왠지 모를 짠함을 느꼈다.


그림 5. 우리별 1호 연구진들의 책상 (출처: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사료관)


나가며

4~5개월 동안 진행됐던 사료 정리의 결과물로 우리별 1호 자료를 목록화한 엑셀 파일 한 개와 약 223건의 스캔본, 3,300건 이상의 시청각 자료가 생성됐다. 내가 주로 국사편찬위원회나 국가기록원에서 받아본 깔끔한 자료들이 인제야 만들어졌다. 만약 사료 정리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깔끔한 사료 복사본이 사료 생산자의 꼼꼼한 정리작업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의 지루한 분류작업을 통해 생겨났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특히나 사료를 보면서 우연히 만난 김승기의 〈HAM〉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했을 ‘아카이브의 선물’이었다. 만약 연구를 하는 도중 실물 자료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해당 아카이브를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복사본에서 느끼기 어려운 사료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연구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우리별 1호 사료수집 사업을 기획하고 사료의 디지털화 및 해제작업을 함께한 국립과천과학관 남경욱, 김금숙, 서길홍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에 활용된 사진자료는 모두 해당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집 및 생산한 자료입니다.
[1] 인공위성연구센터에 대한 연구논문으로 태의경(2015)과 Chung (2021)의 연구가 있다.
[2] 「회의록 (1992~1993)」, 인공위성연구센터.
[3] 「우리별1호 운영 상황보고」, 우리별 1호 운영 및 우리별 2호 개발 현황자료, 인공위성연구센터.


참고문헌

아카이브 자료

인공위성연구센터 (1992. 8.), 「과학기술 실험위성 – 우리별 1호 우리별 우주로」, 우리별 1호 운영 및 우리별 2호 개발 현황자료.

인공위성연구센터 (1993. 5. 24.) 「우리별1호 운영 상황보고」, 우리별 1호 운영 및 우리별 2호 개발 현황자료.

인공위성연구센터 (n.d.), 「회의록 (1992~1993)」.


일반자료

아를레트 파르주, 김정아 번역 (2020), 『아카이브 취향』, 문학과지성사. 

태의경 (2015),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위성 기술 습득과 개선 과정 고찰」, 『한국과학사학회지』 37권 1호, 85-117. 

Chung, S. (2021), “The Formation of Korean Satellite Development Program: The Case Study of SaTReC and SaTReC-I,” 『한국과학사학회지』 43권 2호, 3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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