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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가치의 모든 것을 고민하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가치의 모든 것』 (강동협)

서평


다시 한번, 가치의 모든 것을 고민하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가치의 모든 것』


강동협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kanng1357@snu.ac.kr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세상의 흐름을 구성하는 매우 강력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이고 경제학은 이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의 핵심 원리인 수요와 공급,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자원을 배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시장이 자유로울 때 최대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비효율적 행위자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시장 실패와 같이 한정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경제학의 논리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는 기존의 경제학에 반문한다. 자유로운 시장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왜 발생한 것이고 이에 대해 기존의 경제학은 어째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또한 막대한 공적 자금을 통해 금융 부문을 구제한 정부는 정말로 비효율적 행위자에 불과한가?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목하에 단기적 수익 추구가 금융과 비금융을 통틀어 나타나는 것은 적절한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마추카토는 경제학에서 가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추카토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의 혁신 및 공공가치 교수이며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무지향혁신정책(Mission-oriented innovation policy) 논의를 선도하는 혁신학자이다. 2013년 『기업가형 국가』에서 국가가 혁신 초기 단계의 위험을 최초로 감수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으며 혁신에 상당히 기여한다는 점이 간과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아이폰에 활용되는 인터넷과 시리 기술이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GPS 기술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으로 개발된 것을 들 수 있다. 『기업가형 국가』에서 마추카토는 공공 부문이 혁신을 창출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적절한 몫이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치의 모든 것』은 『기업가형 국가』에서의 논의를 더 확장해 경제적 부의 근원을 다룬다. 오늘날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로 둔갑하였으나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격이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제대로 비판 및 대응하기가 어렵다. 이 책의 목표는 가치에 대한 논의를 통해 가치 창조를 지원하고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책을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먼저 1장, 2장, 3장에서는 가치를 중심으로 경제 사상사와 가치 이론을 살펴보고 가치를 창조하는 생산적 활동과 가치를 착취하는 비생산적 활동을 설명한다. 4장, 5장, 6장에서는 오늘날 비대해지는 금융 부문과 비금융 부문의 금융화 현상, 주주 가치 극대화로 인한 가치 착취를 다룬다. 8장과 9장에서는 위축된 공공 부문과 간과된 정부의 창조자로서 갖는 역할, 그리고 앞서 제시한 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해 논한다.

그런데 왜 가치인가? 어째서 기존의 수요와 공급, 가격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놔두고 가치를 논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마추카토는 가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를 구분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가치 창조를 지원하여 경제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가치 창조는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생산적 활동이고 가치 착취는 기존의 자원과 산출물을 이전하는 것에 불과한 비생산적 활동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이윤과 지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가치 창조를 저해하는 행위에 가치가 있다고 인식되는 것을 막고,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얻는 가치 착취를 규제하며, 지대를 영속화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할 수 있게 한다.

지대를 추구하며 가치 착취가 발생하는 사례로 마추카토는 금융 부문을 제시한다. 본래 금융 부문은 생산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금융 중개 기능과 리스크를 감수하여 막대한 수익을 보상으로 받는다는 논리를 통해 가치 창조 영역으로 변신하였다. 금융 부문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여 단기적 이득을 위해 장기적 이득을 희생시켜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해를 끼쳤다. 가령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에 재투자되어야 하는 수익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여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금융 부문은 규제 완화를 통해 스스로를 육성하며 비대하게 팽창하였고, 리스크 감수를 통한 수익 확보라는 논리로 가치 착취를 정당화하였다. 그 결과 금융 부문은 지대를 추구하는 것으로 높은 이득을 확보하였고 생산적 산업에 투자할 인센티브가 저해되는데 기여하였다.

금융 부문이 팽창한 것과 대조적으로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역할은 위축되었다. 정부는 비생산적 주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민영화 대상이 되거나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마추카토는 정부가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법치, 안보,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정부가 비생산적인 행위자라는 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당하다고 말한다. 먼저 어느 정도 수익성이 확인 가능한 시점부터 투자에 나서고 수익성이 좋은 영역을 도맡아 하는 민간 부문과 달리 공공 부문은 사회에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영역을 담당한다. 다음으로 정부는 리스크가 큰 신기술 개발 초기 단계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기초 연구에 투자하지만 수익은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혁신의 수익 분배에서 공공 부문이 제외되고 민간 부문이 전유하는 지대가 존재하여 정부 실패가 과다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가치 창조가 집합적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보상이 더 형평성 있게 공공과 민간 부문에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실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주주 가치 극대화보다 사회 전반을 고려하는 이해 당사자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고, 금융 부문이 가치 창조를 지원하도록 규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민간 부문의 금융과 더불어 장기적 성장을 목표로 투자하는 인내심 있는 공공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나아가 ‘공공 가치’에 대한 논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가치의 모든 것』은 역사와 경제, 사회, 철학, 정책 등 다양한 부문의 논의를 통해 현대 경제에서 미진한 부분을 검토하고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 개념을 통해 사회 전반에서 필요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담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매우 유익하지만 저명한 학자가 여러 학제의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전개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또한 기존 자본주의의 한계와 금융 위기, 실물 자산과 금융 자산의 괴리, 공공 부문의 위축, 민영화와 소득 불평등 등 다양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점에서 과학학과 구성원들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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