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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저널 제3호(2026.06.)

'사이'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학생저널입니다.  제3호 PDF 다운로드 특집: 감각과 상상 그림의 인지심리학과 관찰의 이론적재성 강규태 가속기 감각하기 : 현장연구자의 민족지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김연화 기술은 어떻게 우리를 늙게 하는가? : '기술적 노화'와 돌봄의 STS 심은섭 케플러의 『꿈』, 달에 관한 광학 이론과 상상 장신혜 서평 아주 사적인 과학의 네트워크 :  도널드 오피츠 외,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 박윤지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 : 김은성, 『감각과 사물: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손하늘 과학을 돌보는 '느린 과학' : 이자벨 스탱게르스,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안유진 대학원생 이모저모 함께 공부하는 일에 관하여 :  나의 첫 학기에 대한 회고 강정섭 낯선 캠퍼스에서 새로운 공부와 익숙해지기 오수환 헌 신입생의 수기 이준영 2025 APPSA TAIWAN 경험기 이형석 첫 학술 발표, 설레었던 데뷔 무대 : 2025 APPSA 참여 후기 정원호 '왜' 이후의 질문을 기다리며 :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 제1회 공연 <학술원 보고> 연출 후기 공일환 SF 단편 <미확인> 구본진 부록 학과 소식 편집 후기

신입생 적응 수기: 헌 신입생의 수기(이준영)

대학원생 이모저모: 신입생 적응 수기


헌 신입생의 수기


이준영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
bestday95@snu.ac.kr


과학학과 학생 저널 《사이》의 구본진 편집장으로부터 신입생의 수기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내가 신입생이었다’라는 의식을 되살려야만 했다. 기고를 제안받았던 시점에는 ‘커먼룸’이라 불리는 학생 공용 공간에서 강의를 같이 듣는 학우들과 다음 주 수업을 위한 대략 200여 쪽의 읽기 자료를 인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이번 주차 읽기는 예전에 봤던 거라 조금 빨리 읽겠네’, ‘다음 주 발제여서 꼼꼼하게 읽어야겠네’하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논문들에서 나오는 매캐한 잉크 냄새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1년이 채 안 걸렸다. 대학원 석사 과정의 1년은 야속하게도 중간 지점을 넘기는 시점이다. 석사 논문 프로포절을 갓 통과하고 이렇다 할 연구도 하지 못한 채 수업만 겨우 따라간다 해도, 벌써 어엿한 후배가 두 학기째 들어오고 있다.

이들에게 과학학 연구자의 길을 친절하고 풍부하게 안내해 주실 학과의 교수님들과 선배님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2025년 봄학기 과학학과 입학 이후 1년의 시간이 어떠했는지를, 신입생 시절이 벌써 아득한 헌 신입생이 자대 배치도 받기 전인 훈련소 5주 차 선배의 마음으로 이 수기를 쓴다. 산을 오를 때 전문 산악인의 조언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것은 바로 직전에 올라갔던 사람에게 듣는 “얼마 안 남았어요” 아닐까. 당장 저번 학기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 발제하고 토론했는지 기말 보고서를 어떻게 썼는지는 새카맣게 잊어버렸어도, 나의 지난 학기들이 과학학과에 처음 발을 딛고 낯설어하는 나에게 남긴 노하우나 꼼수는 분명히 있다.

과학학과에서의 첫 학기는 방대한 양의 읽기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토론 형식의 수업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강의 위주의 수업이 아니라는 것은 둘째 치고, 수업 시간에 나에게 주어지는 발언권의 분량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었다. 읽기 자료는 다 읽었다고 한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심지어는 여러 개의 읽기 자료 중 어느 문헌에서 읽었던 것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토론하다 보면 말이 너무 길어지거나, 말하는 중간에 길을 잃게 된다. 철학적인 배경이나 이론의 사조를 깊게 다루는 주차라면 특히 그러하다.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도대체가 무엇이 다른 것이고 과학학과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인지, 루드윅 플렉(Ludwick Fleck)이 토마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 이론에 무슨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며 왜 특별히 언급되는 것인지를 조리 있게 말할 재간이 나에게는 없는 것 같다.

나처럼 이공계열을 졸업하고 과학사를 연구하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역사”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임진왜란 1592년, 광복 1945년 정도 알고 있는 나에게 한국과 중국, 일본의 상이한 근대화의 과정, 영국의 왕정복고와 명예혁명의 시간선은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세계사 수업이나 시대극의 설명적인 내레이션에 그쳤었다. 그것이 동아시아 과학자들의 계급 의식 형성과 밀접하였고, 과학과 정치의 엮임을 고찰할 수 있는 시기였음을 알게 된 지금은 과학사의 매력에 공감하지만, 첫 학기를 시작할 무렵에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임종태 교수님의 ‘동아시아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수강하는 학생들끼리는 수능특강 동아시아사를 돌려 보았고, 역사를 전공한 학생의 도움을 받아 수업시간 전에 간략한 예습을 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한 학생들은 Allele(대립유전자), Zygote(수정란)과 같은 용어들을 번역하느라, Thyrotropin-releasing hormone(TRF)나 상대성 이론의 개념을 이해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 모 학생처럼 이공계열 학생이라도 철학이나 사회학 세미나를 꾸준히 하였다거나, 김 모 학생처럼 인문사회계열 학생이라도 학부에서 과학기술학 연계 과정 등으로 두 문화를 접해보았다면 과학학과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 더 익숙했을까.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모든 과학학과의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은 전환(가끔 변절로 일컬어질 때도 있다.)을 겪는다고 한다. 인문사회에서 과학기술로든, 과학기술에서 인문사회로든, 아니면 다른 의미로든 과학학과의 사람들은 그 전환에서 낯설다는 공통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년 동안의 과학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연구자 간 주장의 차이를 충분히 구분하지 못했었고, 역사적 맥락에 대해 무지해 인과 관계를 오인했었다. 1년의 적응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은 ‘연구자가 주장하는 개념어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읽기를 재구성’하고, ‘역사적 맥락을 확인할 수 있는 연도나 사건들을 표시’하는 방법들이었다.

과학학과의 교육과 적응이 무색하게도, 내가 토론의 달인이 되었거나 훌륭한 과학사 연구자가 되진 않았다. 나는 저번 수업에도 장황한 헛소리를 했고, 다음 수업에도 그럴 것이다. 단기적으로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헌 신입생은 헛소리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헛소리했는지를 경험적으로 아는 방법에 대해 적으며 이 수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과학학과의 각 교수님의 수업마다 헛소리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은 느린 학습자에게 몇 안 되는 관전 포인트이다. 김정은 교수님은 강의 형식의 수업이라 헛소리하지 않아도 되고, 박상욱 교수님의 수업은 아직 들어보지 않아서 헛소리의 경험은 내가 수강한 토론 위주의 수업을 위주로 적는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 헛소리를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수업은 임종태 교수님의 수업이다. 임종태 교수님은 헛소리를 딱 짚으신다. “그건 아닌데?”, “말이 길을 잃었는데?”라는 말에 기가 죽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논의하는 중에 나름의 보완을 거쳐 윤색한다면 그에 대해서 다시 말하고 평가받을 기회가 언제나 있다. 임종태 교수님의 수업은 직접적으로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서 토론 체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 맞다. 천현득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읽기를 기반으로 한 명확한 해답이 있는 것들을 주로 질문하신다. 오답이거나 불분명한 대답을 들으시면 창밖을 가만히 응시하시는데, ‘학생이 읽기를 한 것인가?’와 ‘읽기가 어려운가?’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듯하다. 홍성욱 교수님은 연구 주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발언의 헛소리 여부를 비교적 판단하기는 어렵다. 보통 교수님의 넓은 학식과 관심사로 학생의 헛소리를 희석하는 방식을 채택하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든 헛소리를 수업에 접붙이는 논변을 보자면 내가 했던 말이 의미가 있는 말이었나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두갑 교수님은 헛소리를 들으면 늘 너털웃음을 지으시면서 “그런가”와 “그러게요”로 응수하신다. 수습은 말한 사람의 몫이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면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며 수업이 진행된다. 달리 말하면, 홍성욱 교수님의 수업에서 토론의 길이는 발언의 질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이두갑 교수님의 수업에서 좋은 질문이 토론의 길이를 늘인다.

좋은 연구자로 성장하는 방법이 아닌 어려움과 헛소리를 아는 법으로 수기의 대부분을 채워서 민망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과학학과 사람들의 전환에 다소간의 어려움과 헛소리가 있었음을 확신한다. 새로운 신입생들에게도 이는 통과 의례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실패나 정체성의 혼란으로 느껴지지 않고, 적응과 노하우의 축적이었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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