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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저널 제3호(2026.06.)

'사이'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학생저널입니다.  제3호 PDF 다운로드 특집: 감각과 상상 그림의 인지심리학과 관찰의 이론적재성 강규태 가속기 감각하기 : 현장연구자의 민족지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김연화 기술은 어떻게 우리를 늙게 하는가? : '기술적 노화'와 돌봄의 STS 심은섭 케플러의 『꿈』, 달에 관한 광학 이론과 상상 장신혜 서평 아주 사적인 과학의 네트워크 :  도널드 오피츠 외,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 박윤지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 : 김은성, 『감각과 사물: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손하늘 과학을 돌보는 '느린 과학' : 이자벨 스탱게르스,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안유진 대학원생 이모저모 함께 공부하는 일에 관하여 :  나의 첫 학기에 대한 회고 강정섭 낯선 캠퍼스에서 새로운 공부와 익숙해지기 오수환 헌 신입생의 수기 이준영 2025 APPSA TAIWAN 경험기 이형석 첫 학술 발표, 설레었던 데뷔 무대 : 2025 APPSA 참여 후기 정원호 '왜' 이후의 질문을 기다리며 :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 제1회 공연 <학술원 보고> 연출 후기 공일환 SF 단편 <미확인> 구본진 부록 학과 소식 편집 후기

SF 단편소설: 미확인(구본진)

대학원생 이모저모: SF 단편소설


미확인


구본진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koobon1998@snu.ac.kr


신림동 원룸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일이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그날 내가 목격한 장면이 꼽히지 않을까. 취객들의 싸움이나 밤새 꺼지지 않는 고시원의 불빛 정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예전엔 서울 시내에 동물원에서 탈출한 코끼리나 얼룩말, 곰 같은 게 돌아다닌 적도 있다는데, 어림도 없다. 내가 본 건 그런 일보다 훨씬 더 설명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자, 검은색 도미노 조각을 생각해 보라. 어떤 무늬도 없이 검고, 유리처럼 반질반질한 … 몇십 미터짜리 검은색 도미노 조각. 나중에 알기를, 어떤 기자는 그 생김새를 ‘검은빛 63빌딩’이라고 묘사했다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게 당신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렇다. 미확인 비행물체. 흔히들 말하는 UFO. 바로 그 UFO가 대한민국 서울 상공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위에.

- 상담 시작해도 괜찮으실까요?
- 네.
- 여러 번 이야기하셨겠지만, 한 번만 더 들어볼게요. 그날 어떤 일이 있었다고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 그날 하루는 정말 특별할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난 돈 없는 연극배우였고, 언제나처럼 공연 연습을 위해 극단으로 출근했으며, 언제나처럼 연출 형이랑 ‘니 연기가 좋으니 마니’, ‘니 해석이 옳니 틀렸니’, 해가 저물 때까지 서로 물어뜯었다. 언제나처럼 소주 한 병에 새우깡 한 봉을 안주 삼아서.

그래서 처음엔 내가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보나, 생각했다. 이상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 형 말에 너무 흥분해서 그런가. 아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아무리 노인 배역이라지만 내가 아직 20대인데 ‘노인 같지 않다’라느니, ‘노인 연기하는 티가 난다’라느니. 그래서 따져 물었다. 내가 노인이 안 되어 봤는데 어떻게 노인을 그대로 재현하냐고,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냐고. 그러자 연출님 가라사대 “야, 알 파치노는 눈이 멀어져 봐서 맹인 연기를 한 줄 아냐?”

술만 들어가면 이야기하는 그놈의 ‘알 파치노 영화’. “우와, 연기 잘하네.”가 아니라 “저 사람 앞이 안 보여서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던 그 영화를 이번에야말로 꼭 보겠다고 마음먹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정말 ‘그 양반 연기는 연기로 안 보이고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겠노라 다짐하면서.

결국 그 영화를 그때 보진 못했다. 내 머리 위에 알 수 없는 거대 직육면체가 떠 있는 상황에서까지 꼭 봐야 할 영화는 아니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 주머니 속에서 일제히 울리던 긴급재난문자 알림 소리가 이 상황이 환각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날부터, 내 머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이상한 느낌’이라고 쓰셨네요? 두통 같은 건가요?
-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뭐라고 표현할 만한 방법이 없어서….
- 아프진 않다고요?
- 네. 뭐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두통처럼 아프다거나 통증이 있는 거랑은 확실히 달라요.

벌써 몇 번째 같은 내용의 대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는 내과 의사, 언제는 외과, 언제는 신경과, 언제는 내분비과…. 나는 한 달째 이곳에 머물며, 살면서 만나본 의사의 수보다도 더 많은 종류의 의사들을 접견했다.

그날, 전국에 발송된 재난 문자는 전 국민을 각자의 집에 격리하도록 조치했다. 다만 그 ‘물체’가 나타난 지점에서 일정 반경 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정부에서 별도로 마련한 시설에 격리되었다. 북한에서 날아온 신무기이거나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 문명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한 상황에 국민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특별 관리 대상’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 욱신거리고 이런 느낌도 아니시고.
- 네.
- 간지럽다거나 그런 불편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 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나는 한 달째 격리 시설에서 ‘의사 투어’를 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에 약 2~300명의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이상 현상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정부는 미확인 물체에서 어떤 바이러스나 방사능이 나왔을지 모른다며 격리를 정당화했다. 각종 바이러스 검사와 방사선 피폭 검사가 이어졌다. 두꺼운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몇 번의 길고 복잡한 검사 끝에 전염성이 없다는 게 확인된 후에는 좀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검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CT 촬영, MRI, …, 어떤 의사는 호르몬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또 다른 의사는 ‘안압이 높아지면 그럴 수 있으니 안압 진단을 해봅시다’라고 말했다. ‘머리로 가는 혈액 순환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갑상선 문제는 아닐까요’, ‘MRI 상에선 전두엽이 좀 수축한 것 같기도요’ ….

다행인 걸까. 해보자고 하는 이런저런 검사를 모두 받고도 신체에 어떤 이상 증세도 검출되지 않았다. 300명 중 그 누구에게도. 그러자 정부는 꼬박 한 달이 지난 이제서야 정신과 의사를 붙여주었다. 늦은 감이 있기는 했다. 내가 담당자라면 거대한 비행체가 갑자기 나타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겐 정신과 상담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진작 말했을 텐데. 그래도 선생님의 따뜻한 말투는 각종 검사로 지친 내게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 환자분도 알고 계시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어요. 그것도 다들 생전 처음 느껴본대요.
- 네, 이상한 일이죠.
- 다른 환자분들과 대화해 보신 적이 있나요?
- 네, 가끔. 오다가다 마주치면.
- 어때요, 그분들은? 그분들이랑 대화할 때는 서로 겪고 있는 증상에 대한 소통이 되나요?
- 어…. 글쎄요?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어제 점심때는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는 아저씨가 제 옆에 앉더니 말을 걸더라고요.

“정부에서 왜 이렇게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집중하는지 알아?”

평소 같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말았겠지만, 왠지 열정적인 아저씨의 눈빛에 마지못해 대꾸해 버렸다.

“…왜 그런대요?”

“그 UFO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대. 우릴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전파를 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정보를 수집해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 어떤 상호작용도 안 한다는 거야.”

“그런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놈이 여기에 나타나서 유일하게 남긴 흔적이 우리 머릿속에 이거라는 거야.”

‘머릿속에 그거’라. 그들은 왜 그런 흔적을 남긴 걸까. 재밌는 것은 사람들이 그 감각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는 거다. 누구는 욱신거린다고도 했고, 누구는 간지럽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건 평소의 아픔이나 간지러움과는 분명히 다른 감각이었다. 며칠 전 집단 상담 때 만났던 경상도 할머니는 자신이 이 감각의 실체를 정확히 안다고 하더라.

“우리 고향에서는 이거를 갖다가 ‘우리하다’하거등. 의사 샘들이 서울 사람이 되가 그걸 우예 알겠노.”

그런데 다른 경상도 아저씨는 그건 이런 느낌이랑은 다르다며 할머니의 의견을 기각했다.

어떤 수험생은 오히려 이곳에 와 있으니 공부도 더 잘되는 것 같고 좋다고도 했다. 비행체가 와서 머리가 더 맑아진 기분이라고.

“되게 개운하고 시원한 기분이에요. 굳이 말하자면, 머릿속에 민트를 넣어놓은 것 같아요.”

계속 이 기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던 학생의 해맑은 말에 몇몇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아저씨는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외계 문명이 우릴 선택했고, 이 이상한 감각은 그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자 능력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주장이 힘을 받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은 없었다. 결국 그 아저씨는 얼마 뒤부터 따로 상담받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사이에는 묘한 연대 의식이 있었다. 밖에서는 친해질 일도, 만나볼 일도 없었을 이질적인 사람들이 같은 감각을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의 동질감을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서로 하는 이야기가 다 달라도, 모두 같은 상황이라는 확신이 우리를 하나로 모으고 있었다.

- 환자분은 배우로 일하신다고 하셨죠. 다양한 감각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시잖아요. 그분들에게 들은 것도 어떻게 한 번 표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제가 그걸 잘 못해서 맨날 혼나긴 합니다만…. 나는 혀 앞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그런데 문득, 그 순간 내가 선생님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저 선생님, 그런데요….
- 네?
- 그러니까, 제가, 제 말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요.
- 네.
- 그 저희가…. 환자가 맞긴 한가요?

어쩌면 나는 표현하는 것보단 포착하는 걸 잘하는 배우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 의사 선생님의 당황한 눈빛을 보았다. 그럴 만도 하다.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한 달 내내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으니까. 내분비계 전문의는 이게 호르몬 문제라고 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혈관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의사는 비행체가 장내 미생물에 변화를 일으켰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진단 증거를 내놓진 못했다.

어떤 교수는 라디오 방송에서 전자파 과다 노출을 의심했다. 미지의 비행체가 나타날 때 강한 전자파가 발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 증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다만 그 교수도 그 정도 전자파면 주변 전자기기들은 어떻게 멀쩡했냐는 다른 패널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의료진들은 우리의 감각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건 다 착각이고, 건강 염려증이고 심리적 방어기제의 적용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 ‘환자들’은 알았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우리는 같은 감각을 가지고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 혼란한 상황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는 거다. 우리가 시설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비행물체는 나타날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것도 취하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격리자들이 느끼던 이상한 감각도 비행체와 함께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쯤 되자 힘이 실린 건 정신과 쪽이었다. 나를 상담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UFO의 등장’이라는 충격이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 현상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행체가 직접 무언가를 작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충격과 강한 암시로 어떠한 신체적 이상이 없어도 같은 증상이 공유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왜 추가적인 발병이 없느냐고 물었다. 발작이나 강박, 정서적 흥분 같은 신경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자는 그 입장에 동조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환자들 사이에 공통된 신체적 증상이 없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기 때문이었다.

그 설명의 가장 좋았던 점은, 특별한 추가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그 설명에 만족했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이상 현상들 중 적어도 한 가지, 왜 이 사람들이 갑자기 검출되지도 않는 이상한 감각을 호소하는지는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한 의사의 가설이 아니라 의료진의 공식 입장이자 정부의 공식 발표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한 달 동안 느꼈던 감각은 ‘강력한 스트레스로 인한 집단 히스테리’, ‘애초에 실체가 없었던 것’ 정도로 결론 났다. 우리 중 일부는 ‘집단 히스테리’라는 게 사라질 때도 이렇게 동시에 없어지는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그 궁금증에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리 ‘집단 심인성 질환자’들은 마지막 상담을 끝으로 ‘완치’ 선언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미확인 물체가 왜 왔는지, 왜 우리에게 그런 감각을 심었는지, 지금은 다시 어디로 갔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채.


한 달 넘게 비워뒀던 집은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극단에는 내일부터 복귀할 수 있다고 해뒀다. 연출 형은 좀 더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한 달 내내 한 게 쉰 건데 뭐. 그렇게 한 달 만에 돌아온 단칸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내가 뭘 해야 할지 깨달았다. 냉장고에서 싸구려 맥주캔 하나를 꺼내 들고 노트북을 열었다. 다행히도 그 영화는 평소 사용하던 OTT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었다. 대배우는 눈이 멀어져 본 적도 없이 눈먼 연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 배우와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도 그의 눈은 텅 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기 드럽게 잘하네.”

나는 남은 맥주를 들이켜고 다시 영화 속 그의 눈을 보았다. 알 파치노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무척 정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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