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지질학의 역사로부터 지질학을 이해하는 시도 : 마틴 러드윅, 『지구의 깊은 역사』 (김은형)

서평


지질학의 역사로부터 지질학을 이해하는 시도 
: 마틴 러드윅, 『지구의 깊은 역사』


김은형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
hhkimok1@snu.ac.kr



지질학은 천문학과 함께 대중들이 어렵지 않게 흥미를 느끼는 과학 분야 중 하나다. 지구의 나이가 45억 살 남짓이라는 것은 우주의 나이가 137억 살이라는 것과 함께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이고, 우리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에 살다가 소행성 충돌로 멸종했다는 이야기 역시 그 어떤 과학 지식보다 널리 퍼져있다. 유명 자연사 박물관은 재미있는 관광 장소로 꼽히며 사람들은 지질학 다큐멘터리를 즐긴다. 다른 과학 분과의 연구자라면 대중들에게 언제나 관심을 받는 지질학의 상황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틴 러드윅(Martin Rudwick)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대중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지질학 이야기가 그 자세한 역사 없이 전해졌을 때 오해를 만들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러드윅은 지질학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지구의 깊은 역사』에 부단한 사학적 노력을 담았다. 오해 없이 지질학을 소개하기 위해 현대 지구과학의 지식을 전달하는 대신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지질학자들이 ‘지구의 깊은 역사’를 발견하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사학자이자 전 고생물학자로서, 그는 자신이 천착했던 지질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역사가 있는 어떤 종류의 과학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러드윅은 서론에서 그런 자신의 기획을 명시한다. 그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세 차례의 대혁명[1]에 버금가는 지구의 역사 발견 과정이 지니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인간의 위치를 변화시켰다는 것과 자연에 고유한 역사가 있음을 드러냈다는 것—가 강조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때 지질학의 역사가 가지는 두 함의는 러드윅이 이후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질학이 어떤 종류의 과학인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를 발견한 지질학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실인 ‘지구가 45억 년을 겪은 천체임’을 알아낸 것에 가려져 그것이 가지는 함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 러드윅의 주장이다.

열두 개의 장을 통해 제시되는 마틴 러드윅의 상세한 서술은 지질학의 발견이 지구의 심원한 시간의 발견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어째서 중대한 함의의 손실과 위험한 오해를 낳는지 깨닫게 한다. 함의가 손실되고 오해가 생겨나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지질학은 오랜 시간 지구의 나이를 몇천 살로 상정해 오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방사성 연대 측정법을 통해 지구의 나이가 45억 살임을 발견해 냈다. 그런데 지질학의 가장 대표적인 연구 대상은 화석이다. 그렇다면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오래됐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화석을 보고도 고작 몇천 년만을 추정한 바보들이 된다. 이때 잘못된 이해와 결합하는 것이 유명한 제임스 어셔(James Ussher)의 기원전 4004년이다. 성서를 통해 지구의 나이를 육천 살쯤으로 추산한 어셔는 창세기 서사를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무시한 성직자로 비추어진다. 즉 갈릴레오 신화를 통해 천문학이 그렇게 여겨지듯 지질학은 종교의 박해로 발전이 저해된 과학, 그런데도 결국 방사성 연대 측정법이라는 과학적 증거의 힘으로 종교의 박해를 이겨내고 진실을 쟁취한 과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지질학의 역사를 “과학이 종교에 맞서 승리를 거둔 개선 행진의 삽화 가운데 하나”(12)로 축소하며 지질학의 역사가 가지는 중요한 두 함의를 없애 버리고 만다. 당연하게도 지질학이 어떤 종류의 과학인지 역시 적절히 알려주지 못한다. 이에 러드윅은 지질학에서 정말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려줌으로써, 우리가 지질학과 지질학사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으로부터 섣부른 추론을 통해 잘못된 이해를 얻게 되는 과정을 끊어낸다. 

먼저 지질학자들은 방사성 연대 측정법이 나오고 나서야 지구의 역사가 수십억 년이라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다. 18세기 후반부터 대부분의 과학지식인은 지구의 역사가 무척 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 막대한 역사를 수량화하여 제시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18세기 초반 하나의 장르로 제시되며 사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지구 이론’의 여파였으며, 다른 이유는 당시 현장 자연사 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화석이 생각만큼 지구의 긴 시간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통념과 같이 화석의 순서에는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으나 화석은 단순히 환경 조건의 변화만을 나타나는 것이라는 반대 입장도 있었다. 학자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 수많은 새로운 동식물을 발견하며 아직 세상의 동식물 중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화석으로 발견된 동식물종이 세계의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할 수 없다면, 즉 완전 멸종을 입증할 수 없다면 생명에 역사가 있다는 주장은 타당한 귀결이 아니었다. 멸종이 정말로 일어나는 현상임이 대체로 받아들여진 것은 대형 육상 동물이라는 연구 대상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퀴비에 이후였다. 이처럼 저자는 지질학에서 화석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지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또한 어셔의 기원전 4004년은 “교회의 억압적 반계몽주의의 상징”(12)이 아니다. 어셔가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 성서를 활용한 것은 당시 성서는 인류 초창기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 중 하나였으며 그중에서도 믿을 만한 근거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기원전 4004년은 성직자들뿐 아니라 연대학자들 전반에 의해 타당한 근거로 산출된 추산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설명이 충분치 않게 느껴진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가 귀중한 자료였다 하더라도 어째서 지구의 역사에 대한 자료인가? 7일의 창조를 다루는 창세기가 어떻게 지구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될 수 있는가? 의문에 대한 답은 러드윅이 주장하는 지질학 역사의 두 가지 함의에 있다.

17세기의 사람 대부분은 인간의 역사와 별개로 자연 세계의 역사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 세계는 인간 역사의 무대 소품과 같이 여겨졌다. 화석이 역사적 증거로 이용된다는 것 역시 문서 기록이 남지 않은 인류사 초창기의 증거로 이용된다는 것을 뜻했다. 심지어 퀴비에(Georges Cuvier)가 입증한 멸종으로 현재 세계와 확연히 다른 과거 세계가 있었음이 받아들여진 후에도, 포유류의 멸종으로 구분되는 두 세계가 인간의 등장까지도 구분하는지는 논쟁거리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함의하는 것은 지구의 역사에 대한 발견이 단순히 지구가 심원한 시간을 가졌음을 보여주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에 대한 발견은 지구가 그 고유의 심원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라는 17세기의 당연한 전제를 깨부수며 이루어졌다.

이러한 함의의 손실은 지질학의 역사에서 “과거에 종교가 지구의 깊은 역사를 발견하는 과정을 늦추거나 방해했다”(439)는 오해와 연결된다. 성서야말로 지구에 인간이 없는 고유한 역사가 존재한다는 근대적 관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질학자들을 도왔지만, 지구의 역사에 대한 발견이 가지는 두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구의 깊은 역사’를 단지 지구의 오랜 나이로 이해한다면 성서는 어린 지구를 상정하는 종교적 믿음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창조와 노아의 홍수에 대한 해석은 지구만의 물리적 역사를 가정하는 근대적 관념의 시발점으로 작용했으며, 이후 지구 고유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시각이 등장했을 때 소수의 성서 축자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지질학과 창세기 사이의 갈등은 정말로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지질학이야말로 과학 대 종교의 갈등 구조가 뒤집힌 사례라는 러드윅의 주장은 지질학의 역사를 면밀히 살핌으로써 신중하게 제시된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질학사의 두 함의와 연결 지어 지질학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지적하는 러드윅의 주장이 가지는 설득력과 비교했을 때, 지질학이 어떤 종류의 과학인지에 대한 그의 주장은 다소 아쉬우며 『지구의 깊은 역사』의 결론에도 의문을 남긴다. 그는 이번에도 지질학사의 두 함의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역사에서 벗어난 지구 고유의 심원한 역사에 대한 발견은 지질학 특유의 방법인 ‘인류의 역사성을 자연의 역사성으로 옮기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질학에서 자연의 역사를 발견해 나가는 방법이 역사학에서 인류의 역사를 발견해 나가는 방법과 같음을 의미하며 이때 역사학의 방법이란 역사에 적용되는 보편 법칙을 적용하는 대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일러주는 잔존 증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는”(16) 방법이다. 즉 러드윅은 지질학의 연구 대상인 지구의 심원한 역사는 자연법칙을 통한 정밀한 예측이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같이 역사적 증거로부터 상향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성을 가지는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질학의 역사에서 어떤 것의 역사적 실재를 입증하는 일과 그 발생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찾아내는 일은 언제나 별개였음을 말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근거로 제시한 지질학의 역사는 인과적 설명에 대한 관심이 지질학의 발전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완전 멸종이 입증되기 전 화석 분포를 가능케 하는 자연적 원인에 대한 관심, 동식물이 출현한 순서와 관련된 자연법칙에 대한 관심, 격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한 관심 등은 지질학 발전과 전혀 무관하게 나타난 관심이 아니었으며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그다음 역사적 실재를 찾아 나가는 데에 기여했다. 

물론 러드윅이 지질학의 발전 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인과적 설명들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음을 말하고자 앞선 주장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며, 필자 역시 상향식 재구성이 지질학의 중요한 특징임에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왜 이처럼 강한 주장을 펼치는지는 책의 결론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지질학은 우리가 ‘과학’에 가지는 통념인 물리학 같은 과학이 아닌 역사학 같은 과학, 인간에 대한 과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러드윅은 ‘지질학이라는 과학’의 이러한 본질적 속성을 대중들에 인식시킴으로써 “단일한 과학이라는 가정이 부과하는 온갖 구속으로부터 과학을 해방”(428-429)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참작하더라도 지질학이 인과적 설명을 찾아내는 것과 구별되는 방법으로 수행되는 과학이라는 러드윅의 주장은, 종교에 박해받은 과학이라는 지질학의 오해를 벗겨낸 후 스스로 새롭게 지질학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장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그는 “관련 증거가 누적적 성격을 띠고 조사 기법의 향상이 비가역적 변화를 일으켰기에 지구의 깊은 역사가 지닌 주된 특징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432-433)고 덧붙이는데, 다소 천진하게 들리는 그의 마지막 주장은 과학에 가지는 어떤 방면의 통념을 강화하는 듯하며, 특히 조사 기법의 향상에서 그가 언급하는 현미경 혹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스스로 지질학과 구별되는 종류의 과학으로 제시한 과학과의 정합성을 바탕으로 지질학의 견고함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마틴 러드윅은 『지구의 깊은 역사』에서 지질학사를 통해 지질학을 소개하는 데에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자 한다. 도서 전반에서 그가 면밀히 제시한 지질학의 역사는 지질학사에서 심원한 시간의 발견을 대신해서 새롭게 주목할 두 함의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었으며 그가 가장 주의를 기울인 지질학에 대한 오해 역시 잘 해소하고 있었다. 러드윅이 들려주는 지질학의 역사로부터 지질학이라는 과학이 가지는 특성을 직접 찾아내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1] 코페르니쿠스 혁명, 다윈 혁명, 프로이트 혁명.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