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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저널 제3호(2026.06.)

'사이'는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학생저널입니다.  제3호 PDF 다운로드 특집: 감각과 상상 그림의 인지심리학과 관찰의 이론적재성 강규태 가속기 감각하기 : 현장연구자의 민족지 연구 방법론에 대하여 김연화 기술은 어떻게 우리를 늙게 하는가? : '기술적 노화'와 돌봄의 STS 심은섭 케플러의 『꿈』, 달에 관한 광학 이론과 상상 장신혜 서평 아주 사적인 과학의 네트워크 :  도널드 오피츠 외,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 박윤지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 : 김은성, 『감각과 사물: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손하늘 과학을 돌보는 '느린 과학' : 이자벨 스탱게르스,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안유진 대학원생 이모저모 함께 공부하는 일에 관하여 :  나의 첫 학기에 대한 회고 강정섭 낯선 캠퍼스에서 새로운 공부와 익숙해지기 오수환 헌 신입생의 수기 이준영 2025 APPSA TAIWAN 경험기 이형석 첫 학술 발표, 설레었던 데뷔 무대 : 2025 APPSA 참여 후기 정원호 '왜' 이후의 질문을 기다리며 :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 제1회 공연 <학술원 보고> 연출 후기 공일환 SF 단편 <미확인> 구본진 부록 학과 소식 편집 후기

소모임 활동기: ‘왜’ 이후의 질문을 기다리며: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 제1회 공연 <학술원 보고> 연출 후기(공일환)

대학원생 이모저모: 소모임 활동기


‘왜’ 이후의 질문을 기다리며: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 제1회 공연 <학술원 보고> 연출 후기


공일환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박사과정
olbers@snu.ac.kr


과학학과 연극반 블랙박스가 2024년 8월 22-3일 서울대학교 28동 103호 강의실에서 연극 <학술원 보고>를 올렸다. 대체 왜?

내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아무리 대학원생이라지만 방학까지 책만 읽고 싶지는 않았다. 삶은 틈새가 하나쯤 있어야 살만하다.(이건 결론이 아니라 전제다.) 그래서 나는 그 방학에 무엇이건 읽기와 쓰기가 아닌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그래도 연극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괜찮았건만. 종강이 가까운 그날 밤 하필 학과 종강 모임에 오래 남아 있었다. 하필 와인이 많이 남아서 잔뜩 섞어 마셨다. 하필 내 앞에 명배우 구본진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학부 시절을 바친 연극 동아리 이야기를 했다.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하자고 해 버렸다. 연극을 또. 하필.

내가 아는 한 연극은 인간의 활동 중 가장 비효율적이고 반자본적이다. 우선 연극은 돈을 내고 시작한다. 감사하게도 이곳저곳에서 후원을 받지만 공연 제작비를 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금액이 없을뿐더러, 뭘 남겨서 해먹을 생각도 없다. 남는 게 없는데 열댓 명이 모여서 뭘 자꾸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든다. 결국 부수고 깔끔하게 치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없애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한다. 배우는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많은 양의 텍스트를 실수 없이 외우기 위해 매일의 샤워 시간까지 알뜰하게 짜낸다. 연출은 아무래도 좋을 지시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양 행세한다. 스탭들은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해 쿠팡 배달비와 당근마켓 용달비를 저울질한다. 우리는 노션에서 물품 구매 결재 라인을 구축하고 매주 줌에 모여서 진척을 공유했으며 무슨 무역회사처럼 다 끝나고 ‘소래포구’에서 회식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뭘 남긴 게 없다.

두 달 준비한 공연의 60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추억, 열정, 팀워크, 그런 건 남은 것이라기보다 남은 것이 있어야 할 텅 빈 그 자리에 우리가 만들어 넣은 것일 뿐이다. 그럼 도대체 연극을 왜 하나? 그러게. 만들어낸 답들은 있지만 나 스스로도 설득되지 않는다. 마땅한 답도 없으면서 술만 마시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연극을 하겠노라 공언한다. 그리고 첫 연습부터 후회한다. 공연 직전이 되면 다시는 안 하겠다며 다짐한다. 그런데 끝나면 또 뭔가 재밌었던 것 같고. 그야말로 중독자다. 뭐, 어쩔 수 없지. 이쯤 되면 ‘연극을 한다’라는 것도 무언가의 결론이 아니라 전제인 것 같다. 이번 공연도 그렇게 별다른 계기 없이 때가 되어 출항한 프로젝트다. 연극 금단증상을 홀로 삭여야 했던 보통과 달리 이 공연이 정말로 공연장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연극 중독자가 또 있었다는 점 때문일 거다. 학부 때부터 배우의 경력을 다져 온 본진이가 있었기에 이 공연은 올라갈 수 있었다. 두 연극 중독자의 꾐에 주변 친구들이 스멀스멀 넘어가 어느새 석사과정 학생들로 이루어진 번듯한 팀이 만들어졌다.

한번 시작하면 후회할 틈도 없다. 두 달이 주어졌다. 하지만 학부 시절처럼 시간을 풍족하게 투자할 수는 없다. 본업이 있으니까. 방학 두 달은 신인 배우를 육성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일뿐더러 배우를 희망하는 공연진도 따로 없었다. 베테랑 배우 한 명에 모든 걸 걸고 1인극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갖고 있던 답은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였다. 2017년 학부 신입생 세미나에서 독문과 김태환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카프카 단편선을 읽으며 이 1인칭 단편소설을 처음 접했다. 이 소설은 아프리카의 황금 해안에서 붙잡힌 야생 원숭이 빨간 페터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이 된 지 5년이 지나 ‘학술원’에서 스스로의 여정을 반추하는 강연 형식이다. 처음 읽을 때부터 연극 공연에 딱 맞는 대본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대사가 실제로 들리는 듯 생생하고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텍스트의 힘이 대단하다.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수많은 극단에서 <보고>를 올렸더랬다. 한국에서도 거의 40년째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변주를 거친 작품이 올라온다.

이 텍스트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존 해석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쭙잖게 새로운 걸 해보겠다고 원작을 망가뜨리는 건 더 싫었다. 우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원작 텍스트를 안 고치고 그대로 간다. 노골적인 현시대 비판은 삼간다. 스크린이나 스피커의 전자기기 사용을 최소화해서 이 연극의 배경이 21세기든, 19세기든, 13세기든 말이 되도록 꾸린다. 여기까지는 꽤 전형적이다. 여기에 추가한 우리의 새 원칙들은 연극 서사의 ‘내적’과 ‘외적’ 측면에서 하나씩 있었다. 원숭이를 흉내 내지 않는다. 그리고 구연동화를 거부한다.

먼저 내적 원칙.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끝 모를 인간화의 길을 걷는 주인공 빨간 페터를 원숭이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울음소리로 희화화하는 것만은 피하려고 했다. 지금껏 많은 공연이 페터를 웃기게 묘사했고 나름 재미도 있다. 하지만 페터의 인간화 투쟁의 진정성을 무시하거나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인간화의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단정 짓는 건 과학학 전공자로서 지적·윤리적·미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본진 배우는 연극 내내 ‘원숭이 같은’ 동작을 한 번도 안 했다. 텍스트에 묘사된 ‘야만적’ 원숭이의 모습은 무대에 세워진 거울 안의 ‘야만’ 상태의 페터를 관객이 오직 상상만 할 수 있게끔 했다.

노골적인 재현을 피하는 건 구연동화를 피하자는 외적 원칙과도 연결된다. 배우가 대사의 내용을 말 그대로 따라 할 때 연극은 구연동화가 된다. 대신 우리는 배우가 절대 대사대로 행동하지 않는 청개구리 연출을 택했다. “침을 뱉”는다는 대사에서 배우가 진짜 침을 뱉어버리면 재미가 없다. 대신 우리는 분필 조각을 칠판에 던졌다. “저는 그를 따라하”는 인간화 훈련 회상 장면에서 페터가 ‘저’를 그대로 묘사하면 재미가 없으니 우리의 페터는 ‘저’ 대신 ‘그’를 재현했다. 페터의 인간화를 도와준 “많은 선생들”은 실험실 실린더가 됐고, 페터의 인간화를 맞이하는 “지식의 빛살”은 쨍쨍거리는 트라이앵글과 종소리가 되었다. 물론 청개구리 연출이 그 자체로 구연동화 연출보다 효과적이거나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한 번 정한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우회로를 찾고 머리를 싸매고 이상한 아이디어들을 내는 제작 과정이 재미있었다.

연극 준비의 절반은 연습실에서 이루어지지만, 나머지 절반은 연습실 바깥의 예약, 행정, 회계, 구매, 배치, 회의가 가득 채운다. 매주 zoom으로 진행한 공연진 전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공연 장소였다. 대학원생이 학기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방학 중에 공연 뒤처리까지 끝내야 했지만 이미 학내 무료 공연장들은 예약이 마감되었다. 외부 유료 공연장을 빌리기에 우리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자연대 강의실 하나를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하긴 제목도 <학술원 보고>니까 말이 되긴 했다. 학내 예약 사이트에서 28동 103호를 선점하고 어리둥절해하시는 자연대 행정실 선생님과 대화하는 지난한 과정을 행정기획 하늘이 담당해 주었다. 공연장이 결정되자 강의실의 형광등, 분필, 칠판, 좌석, 전자교탁까지 모든 요소를 공연에 녹여내기 위한 공연진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는 피곤하고 재미가 없고 따분하기 마련이라, 회의 말고도 공연진 모두가 제작에 주도적으로 기여한다는 감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공연진은 일정 횟수 이상 연습을 참관해 본진이를 ‘조종’하는 연출의 재미를 공유했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러닝타임이었다. 일반적인 연극(90~120분)에 비해 <학술원 보고>의 공연 시간은 60분 정도로 짧다. 먼 길 오신 관객이 아쉽지 않도록 충분한 콘텐츠를 마련해야 했다. 연극을 1부로 하고 2부를 텍스트와 공연에 대해 관객과 논의하는 GV로 꾸리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게 과학학과 연극반의 정체성 만들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관객과의 대화’, ‘과학학과 예술 사이’, ‘카프카와 ‘몸’ 읽기’의 각각 다른 테마로 각 공연의 2부 세션이 꾸려졌고, 과학학과의 민병웅·지민주 선생님, 경희대 정세권 선생님과 서울대 최윤영 선생님을 GV에 초청해 논의의 전문성을 높였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윤지가 매끄러운 사회로 세션을 이끌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또 어느 정도 준비된 답변을 드렸을 때 그런 답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과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GV에서 연출은 아무래도 연출 의도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이 극을 왜 골랐는지, 이 장면을 왜 이렇게 배치했는지, 각색을 왜 (안)했는지. 수많은 ‘왜’들 중 몇 개에 대해서는 답이 있고 나머지는 답이 없다. 게다가 나는 있는 답을 숨기거나 없는 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석은 관객 여러분 몫이죠’의 무책임함과 ‘제가 여기서 왜 이렇게 했냐면요’의 독단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멋있는 연출인 척하고 싶었으니까. 테크노사이언스, 신유물론, 블랙박스화, 신체성, 규율, … ‘STS 통론’에서 배운 유식해 보이는 말들을 조합해서 챗GPT마냥 말들을 쏟아냈다. 만약 같은 질문을 지금 다시 받으면 더 낫고 진정성 있는 ‘내 답’을 생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학술원 보고>를 왜 만들고 부수고 기억하고 잊어버리는지? 많은 게 여전히 흐릿하지만 공연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남은 단서는 하나 있다. 성진의 석사학위 프로젝트인 MTF 트랜스젠더의 목소리 연구다. 종착지가 있을 수 없는 여정. 그러나/그래서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도) 계속하는 삶.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고 묻든 말든 계속된다는 것. 그렇다면 곧 떠오를 다른 질문들.

연극 뒤에 우리 공연진에게 내가 갖는 감정은 전우애다. 아무리 연극 중독이라지만 현업을 놓지 않고 수십 쪽의 대사를 외운다는 대업을 달성한 본진. 꼼꼼함으로 무장해 공연진의 돈과 시간을 수호한 하늘. 처음 해보는 연극 홍보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객석을 가득 채운 성진. GV 무대 앞뒤에서 전문성과 품격을 높이고도 남는 힘으로 스탭 분야 이곳저곳에서 활약한 윤지. 비상한 기획력과 항상 정답을 품은 지혜로 연극반을 돌본 상현. 무대와 포스터뿐 아니라 이 영세한 동아리에 아름다운 굿즈의 은혜까지 내린 한나. 노트북 말고 몸을 써서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연출의 요상한 요구에 응하고 매 공연 생생한 음향효과들을 만든 효정. 연출 의도를 세심하게 묻고 본진이의 얼굴과 패션을 우리의 페터의 그것으로 구현한 현우. 무슨 능력이 필요하든 우리 중 누군가는 그걸 해낼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는 경험은 귀하고 짜릿하다.

그리고 공연 바깥에서 관심과 애정으로 이 귀한 집단이 가능하도록 힘써주신 분들이 있다. 학과장이셨던 임종태 교수님과 행정실의 최장현 선생님을 비롯한 과학학과와 자연대의 많은 분들이 공연 제작에 관심을 보여 주시고 학과의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해 주셨다. GV에 초청된 선생님들은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흔쾌히 공연 관람과 열띤 논의에 참여해 주셨다. 강규태 선배는 소수의 공연진이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공연장 바깥에서 관객맞이를 도와주셨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바쁘신 중에도 방학에 짬을 내어 학교에 오셔서 유무형의 후원과 수많은 질문을 보내주셨다. 모든 분께 공연진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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