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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학생저널 제3호(20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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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과학의 네트워크: 도널드 오피츠 외,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박윤지)

서평


아주 사적인 과학의 네트워크: 도널드 오피츠 외,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


박윤지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
flask42@snu.ac.kr


근대과학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 과학사 초기의 많은 연구들은 실험실이나 학회, 여행이나 상행처럼 대외적 교류가 일어나는 전문적이고 제도적인 영역에 주목했다. 그러나 과학은 정말로 공적이기만 한 것인가? 혹은 과학 지식은 공적인 장소들에서만 생산되었나? 지식이 생산된 장소는 과학에 어떤 성격을 부여하는가? 그렇다면 공적인 장소가 아닌 곳에는 어떤 이들이 있었나? ‘공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던 곳에서의 과학 활동이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지식을 생산했는가? 『근대과학 형성과 가내성(Domesticity in the Making of Modern Science)』의 저자들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과학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로 공적인 영역들보다는 가내 영역, 가정, 친족과 같은 ‘가내(domestic)’를 주목할 것을 이야기한다.

과학사학자 스티븐 셰이핀(Steven Shapin)이 ‘17세기 영국의 실험의 집(The House of Experiment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에서 신사들의 사택을 주목했던 것을 넘어, 저자들은 집 안의 다양한 공간들에서 어떤 과학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 활동들이 어떤 식으로 다시 가외의 장소들과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있다.[1]  저자들의 연구는 단순히 그동안 간과되었던 ‘가내’의 중요성을 발굴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며 계속해서 공과 사, 가정과 일의 이분법을 흔들고 그 구분 자체를 유연하고 투과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린다. 이자벨 레모농(Isabelle Lémonon)과 로랑 다메쟁(Laurent Damesin)의 「계몽과학에서 젠더와 공간 – 마담 뒤피에리의 과학 작업과 네트워크(Gender and Space in Enlightenment Science: Madame Dupiéry’s Scientific Work and Network)」, 폴 화이트(Paul White)의 「다윈의 과학가정과 가내성의 특징(Darwin’s Home of Science and the Nature of Domesticity)」 등이 그 예이다. 후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정의 일과 분리되는 가내의 과학생활’로 재천명되는 ‘일과 가정의 분리’는 이 책의 구도 안에서 “매우 삼투적이며 심지어 함께 용해될 수도 있”(88)는 것이 된다. 이들의 연구는 가내성과 공공 영역이 계속해서 교차되고 서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외-가내 영역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과학 지식 또한 두 영역 사이, 혹은 그 경계에서의 끊임없는 교류와 협상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또한 여러 가내 활동들을 재해석하면서 이전까지 지식 생산자로 주목받지 못했거나 남성 석학들의 보조자 정도의 위치로만 해석되어왔던 여성들의 활동을 주목하기도 한다. 제1대 보퍼트 공작부인 메리 서머싯(Mary Somerset)의 지위와 활동을 정원사 혹은 수집가의 정원 활동(gardening)에서 식물학자의 진지한 식물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줄리 데이비스(Julie Davies)의 연구나, 식물학자인 헨데리나 스콧(Henderina Scott)과 물리학자인 허사 에어턴(Hertha Ayrton)을 그들이 속했던 비공식적 네트워크 안에 위치시키고 그들의 홈메이드 과학의 아마추어성에 어떻게 당대의 젠더 인식이 개입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클레어 존스(Claire G. Jones)의 연구는 여성들의 연구와 여성 실행자(practitioner) 자체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공적이거나 사적인 네트워크 사이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위치를 확보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했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집 안의 다양한 장소와 가족들을 호명하는 글들은 자칫 전체적인 구성을 산만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겠으나 편자들은 장소와 시대를 넘나드는 글들을 세 가지 테마로 흥미롭게 배치하고 있다.

가내 현장을 과학의 현장으로 분명하게 불러오는 일련의 연구들은 크게 세 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과학 지식의 생산 장소로 가정을 주목하면서 가내 영역의 맥락 안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여성들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성공과 마찰의 모습들을 능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부는 과학 활동들이 어떻게 가내로 스며들었는지, 또 가내의 요소들이 과학과 기술의 담론들과 서로를 구성하고 있는지 서술한다. 도널드 오피츠(Donald L. Opitz), 케이티 프라이스(Katy Price), 캐럴 모리스(Carol Morris)와 조지나 엔드필드(Georgina Endfield)는 가내의 장소들을 문제화하면서 기술이 가정에 들어오고 나갈 때 기술이 젠더 및 가내의 공간과 협상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후 3부에서는 협업, 상속, 친족 및 유사 친족관계 안에서 만들어지고 순환하는 과학 지식을 다룬다. 여기서 가정은 가족 구성원의 세대를 거치며 자본과 권력이 가정 안팎으로 이동하거나 지식이 변형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가외의 공간과 만나며 젠더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책에서 나타나는 행위자들의 교류는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인 것이었으며, 개인 간의 친밀함에 기반한다.

기실 어떻게 보자면 교류의 기반이 사적인 것에 있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목적을 불문하고 사람 사이의 모든 교류는 친밀함과 감정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그렇다면 가내성에 주목할 때 행위자들의 사적인 교류와 친밀함은 어떻게 중요해지는가? 각자의 가내 영역을 관리하며 그 안에서 과학 지식을 생산하고 ‘동료 자매 석학(savant fellow sister)’ 혹은 남성 석학 동료들과 교류하던 여성들은 동성 사회나 가족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식 활동에 참여했다. 지식과 권력, 자본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가업처럼 이어졌으며, 유사 친족은 친밀성을 기반으로 생물학적 혈족을 대체하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친족과 유사 친족, 혹은 부부 간에 건설된 사적인 네트워크를 따라 이동한다. 최근 번역된 『궁정인 갈릴레오(Galileo, Courtier)』와 같이 이 책 또한 과학이 고독한 천재의 작업이라는 상을 벗어나 과학이 만들어지는 네트워크와 그 사이에 개입하는 수많은 충돌을 그려낸다.[2] 

물론 이 책이 가내와 가외의 네트워크, 가정 내의 장소 등이 과학과 맺고 있는 관계를 다각도로 서술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저자들이 책의 말미에 적고 있는 것처럼 가내성과 과학의 관계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가정과 가구, 가내라는 용어들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종종 혼용하고 있다는 점,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 활동과 가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가내-기반 과학을 모두 같은 가내성의 카테고리 안에서 다루고 있는 점 등은 더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가정 내에서 관찰되는 가내성과 가외에서 보이는 가내성의 양상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가내성의 무대에서도 ‘무대 안’과 ‘무대 밖’을 구획하려는 요소가 있었다면 어떤 요소가 이 경계를 만들었는가? 저자들이 주장하려는 것처럼 집단적이면서 동시에 가내적인 기획인 과학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시대별, 문화별로 특징적인 가내성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은 어떠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이 책이 제안하고 있는 연구의 방향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아직 해명되지 않은 의문들과 모호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학과 가내성을 대립 관계로 설정하는 기존의 역사학적 가정에 직접 도전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과학사 연구에 선구적인 전환점이 되어준다. 가내성과 과학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 앨릭스 쿠퍼(Alix Cooper)가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탐구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책을 통해 가내의 지식경제, 성의 정치학, 교차하는 젠더, 사적 교류, 가내의 문턱을 가로지르는 개인성(privacy)과 공공성(publicity)의 배치에 대한 논의의 장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1] Shapin, S. (1988) “The House of Experiment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Isis, Vol. 79, No. 3, 373–404.

[2] 마리오 비아졸리, 박초월 옮김 (2025), 『궁정인 갈릴레오: 절대주의 문화에서의 과학적 실천, 소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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