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 김은성, 『감각과 사물』
손하늘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
jamiesohn@snu.ac.kr
사회과학자는 무엇을 목표해야 하는가? 사회 현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술해야 하는가, 아니면 올바른 해결책을 제안해야 하는가? 혹은 사회 현상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제작해야 하는가? 김은성 선생님께서는 몇 년 전 “무릇 사회학자라면 첫 번째를 정답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의아했다. 사회 현상을 기술하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어떻게 사회 현상을 그려내는 것만으로 세상의 문제를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감각과 사물』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는 제목을 충실히 따라 도덕과 시민권(1부), 에너지 전환(2부), 정치와 경제(3부)과 관련된 논의를 ‘감각과 사물’의 렌즈를 통해 읽어 내려간다. 저자들은 또한 여러 가내 활동들을 재해석하면서 이전까지 지식 생산자로 주목받지 못했거나 남성 석학들의 보조자 정도의 위치로만 해석되어왔던 여성들의 활동을 주목하기도 한다. 제1대 보퍼트 공작부인 메리 서머싯(Mary Somerset)의 지위와 활동을 정원사 혹은 수집가의 정원 활동(gardening)에서 식물학자의 진지한 식물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줄리 데이비스(Julie Davies)의 연구나, 식물학자인 헨데리나 스콧(Henderina Scott)과 물리학자인 허사 에어턴(Hertha Ayrton)을 그들이 속했던 비공식적 네트워크 안에 위치시키고 그들의 홈메이드 과학의 아마추어성에 어떻게 당대의 젠더 인식이 개입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클레어 존스(Claire G. Jones)의 연구는 여성들의 연구와 여성 실행자(practitioner) 자체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공적이거나 사적인 네트워크 사이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위치를 확보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했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집 안의 다양한 장소와 가족들을 호명하는 글들은 자칫 전체적인 구성을 산만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겠으나 편자들은 장소와 시대를 넘나드는 글들을 세 가지 테마로 흥미롭게 배치하고 있다. 서론인 1장에서는 책을 아우르는 이론적 배경을 설명한다. 특히 감각사회학 또는 감각인류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감각학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감각학은 몸을 기호로 보는 후기구조주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언어가 아닌 방식 – 감각과 사물 – 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특히 여기에서는 어떻게 감각 경험이 근대(modern)라는 거대한 주제의 구성 과정에 결부되어 있으며, 왜 이것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피력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매개하는 감각은 우리의 주체와 인격을 형성하며, 따라서 시민권과 정체성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먼 과거에서부터 그리하여 왔다. 예컨대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악취는 ‘제때 위생을 관리하지 못한 자’나 ‘저주받은 자(중세 시대 ‘마녀’의 경우)’ 등 소외되고 배제되는 집단의 성질로 간주되어 왔다. 조지 오웰(Geroge Orwell)의 1937년 저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The Road to Wigan Pier)』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나온다. “서구에서 우리 하층 계급은 후각을 통해 동료들로부터 분리되어 왔다. … 출생이나 부, 교육보다 계급을 더 효과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로 아침 목욕의 여부이다.”[1] 이처럼 냄새라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깨끗한 물과 욕조를 포함한 화장실이라는 조건은 서양 근대 노동계급을 상류층으로부터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 다시 말해 감각과 사물은 단순히 생리적인 현상을 넘어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와 결합해 우리 삶에 침투한다. 책의 1부를 여는 2장에서는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후, 한국인들의 도덕과 인격 관념이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를 다룬다. 이를 위해 저자는 팬데믹 초기 맘카페 게시판을 탐색하며, 코로나 확진자에 관한 게시물과 댓글이 이루는 담론을 분석한다. 당시 맘카페 회원들은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매우 활발히 공유했는데, 이는 그들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김은성은 “도덕은 사람과 사물 간 어셈블리지(assemblage)의 결과”이며, 동선 정보는 “확진자의 도덕적 인격을 만든다”고 주장한다(57). 예컨대 마스크를 착실히 착용하고 사람이 붐비지 않은 곳을 짧은 시간 내에 방문한 사람은 도덕적이고 훌륭한 시민이 되지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던 사람은 이기적인 ‘무개념’ 시민이 된다. 이때 사물이나 장소는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자는 아니지만,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렇게 변모한다. 즉 코로나19와 관련한 도덕은 바이러스를 차단하여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스크라는 인공물의 유무, 그리고 ‘3밀(밀폐·밀집·밀접)’ 환경에 해당하지 않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킬 수 있는 장소성의 유무 등과 얽혀 만들어진다. 결국 도덕은 “인공물의 영향으로 물질성을 갖[으며]”, “장소성을 갖[고]”, “행위자의 공간적 이동성과 관계한다(86-87)”. 3장에서는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을 다룬다. 저자는 여기서 소리 시민권(sonic citizenship) 개념을 제안한다. 소리 시민권이란 “소음을 줄여야 하는 의무 또는 소음을 발생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정상적인 청력의 사회 구성원의 지위, 인격, 또는 정체성”을 뜻하며, 소리에 대한 지식에 따라 만들어진다(94). 아파트 층간소음 갈등에서는 층간소음이란 무엇인지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청취자(normal listeners)란 누구인지가 동시에 정의된다. 소음은 비정상적 소리를 뜻하고, 귀가 매우 예민한 사람은 비정상적인 청취자로 분류된다. 층간소음 거버넌스에서 사용되는 소리 지식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에 따라 이상적인 시민권이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처럼 저자는 “감각과 사회는 서로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공동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100). 책의 2부로 넘어오면 얼핏 보기에는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풍수와 무속신앙, 그리고 풍력발전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샤머니즘이 어떻게 에너지 전환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2024년 개봉한 영화 <파묘>를 떠올려 보라. 저자가 인터뷰한 시골 노인들은 “풍력발전기가 일제강점기에 명산에 박은 일제의 쇠말뚝과 비슷하다”며 난색을 보였다(140). 또한 풍력발전기가 ‘휙 휙’ 하고 밤에 내는 소음과 번쩍번쩍하고 빛나는 것이 마치 도깨비의 짓과 같다고 말했다(156-157). 이를 통해 김은성은 산과 바람, 그리고 물 등의 자연과 지리에 대한 동양적 해석을 의미하는 풍수 사상이 한국의 물질문화를 구성하는 데 일조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적 언어를 선사한다고 주장한다. 풍수와 무속신앙에 익숙한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 담론을 바라보고, 에너지 전환 기술을 통해 다른 물질성을 연상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5장에서는 장소에 대한 기억과 장소 파괴(place disruption)에 대해 다룬다. 산사태 같은 천재지변이나 지역개발사업을 통해 발생한 인재(人災), 그리고 생태계 파괴는 해당 지역 거주민에게 부정적인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기존의 자연을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공간으로 새로이 감각하게 만든다. 또한 거주민들이 장소에 가진 애착심이나 그들의 ‘장소정체성’의 파괴하기도 하며, 심각한 경우 트라우마를 안겨 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장소성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고 장소성의 변화가 거주민의 가치관이나 담론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위한 근거로서 과거 장소 파괴의 기억이 현재의 에너지 전환이나 지속가능한 개발 수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풍력발전단지 설립을 반대하는 경상북도 영양과 영덕, 그리고 경상남도 의령군의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풍력발전기로부터 감각하는 바가 그들이 생태적, 자연적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낸다. 3부에서는 감각과 사물의 렌즈를 통해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이야기한다. 6장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사회운동 현장의 풍경을 비교하며 어떤 인공물들이 시위 퍼포먼스에 사용되고 시위 공간을 이루었는지를 분석한다. 예컨대 80년대에는 학생들이 폭력 시위를 하며 돌이나 화염병, 최루탄을 주로 사용했다. 1989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자, 1990년대부터 화염병의 사용은 줄어들고 쇠 파이프를 이용한 폭력 시위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1998년 정부가 경찰의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자, 폭력 시위는 점차 평화 시위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요컨대 2000년대 집회는 음악이나 공연을 전면화하였다. 그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시위 풍경은 촛불을 활용하여 “애도와 동정의 감정을 자아내[고]”, “정직하고 따뜻해 보이[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220-221). 이처럼 인공물은 특정한 문화를 형성하거나 억제하는 효과를 지닐 수 있다. 이어지는 7장에서는 2000년대 이후 채증 카메라나 소음 측정기 같은 기술적 장치들이 어떻게 시위 참여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며, 시각과 소리를 경유해 한국 정부의 감시 권력을 강화하는지 분석한다. 마지막 8장은 독자를 농산물 경매장으로 데려간다. 저자에 따르면 농산물 경매는 1990년대 말부터 전자 경매로 전환되었다. 기존에는 수신호를 사용하여 경매사와 중도매인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났다면, 이제는 컴퓨터와 무선 응찰기와 같은 시장 장치를 경유하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인공물의 출현으로 달라진 어셈블리지가 인간 행위자의 감각 능력과 권력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암묵지(tacit knowledge)와 같은 그들의 감각적 전문성이 변화하며, 시장의 흐름 또한 변화하게 된다. 중도매인들은 더 이상 과거 수지 경매에서처럼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지 않으며, 경매사와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온 힘을 다할 필요가 없다. 단지 각자 전자 응찰기가 놓인 의자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면 될 뿐이다. 이처럼 전자 경매는 경매 참가자라는 인간 행위자와 시장기기 간의 새로운 어셈블리지와 퍼포먼스 형태를 변화시킨다. 『감각과 사물』은 한국의 사회 현상을 ‘감각과 사물’을 중심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살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앞서 4장을 설명하는 데 있어 내가 영화 <파묘>를 끌어왔듯, 2022년 책의 출간 이후 한국에서는 계속하여 유사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3장은 2025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층간소음에 관한 영화 <84제곱미터>를, 5장은 2025년 3월 영남, 충청, 호남 지방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를, 6장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아이돌 응원봉 시위’를, 7장은 국내 및 국외 청년들의 친-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와 이에 대한 채증 및 체포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독자는 다양한 현상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경험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관한 색다른 시선을 제공해 준다. 나는 글의 서두에 사회학자의 소명에 대해 질문했다. 사회 현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술하는 것, 보편적 이론을 제작하는 것,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 중 우리 연구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목표란 무엇인가? 저자는 한국 사회과학계가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탁상 연구와 이론적 도그마”로 이루어져 있음을 비판한다(46). 사회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충 ‘멋있어 보이는’ 이론을 들고 와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학계를 (그것이 국내가 되었든 국외가 되었든) 주류 이론적 흐름에 종속되게 만든다. 사회 현상을 기술하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로 사회를 관찰하는 것은, 곧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현 사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은 우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어디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아픈지를 알고 난 뒤에야 시작되어야 한다. 다리를 다쳤는데 팔을 치료하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과학자들과 과학기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감각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좋은 교과서이다. 나는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김은성 선생님의 수업을 자주 들었다. 사실 나를 여기 과학학과로 이끈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선생님의 감각사회학 수업이다. 졸업한 지 2년이 넘은 지금, 새로운 소속으로 선생님의 책에 대한 서평을 작성할 수 있어 기쁘다. 이번 기회에 『감각과 사물』을 다시 읽으며 여러 그리운 감정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힘들었을 때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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