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과학을 돌보는 ‘느린 과학’: 이자벨 스탱게르스,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안유진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석사과정
ayujin@snu.ac.kr
왜 과학은 느려져야 할까? 사람들은 과학이 삶을 더 살기 좋게 해주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품고 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기후 위기를 불러일으키거나 기업의 이윤 극대화에 쓰이는 등 삶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현재의 과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과학을 통해 공존과 공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벨기에의 과학철학자인 이자벨 스탱게르스(Isabelle Stengers)가 쓴 책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은 하나의 유일한 과학(Science)이 아니라 다원적인 과학(science)를 추구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2013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쓰였고, 2025년에 한국어로 출간된 판본은 2018년에 출간된 영어 번역본을 중역한 것이다.[1] 과학은 위험에 마주해 있다. 단일한 기준을 내세우고 객관성을 강조한 ‘빠른 과학’은 과학적 연구의 신뢰성을 훼손하려 드는 소문, 음모론, 불리한 이해관계를 드러내는 반론에 공격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가와 과학자들은 대중을 유아적으로 보고 그들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라거나 ‘과학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스탱게르스는 과학을 평가하고 과학과 세상의 연결성을 논의하고 과학자들에게 그 답을 요구하는 ‘감식가(connoisseurs)’를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느린 과학을 위해서는 과학자와 대중 모두가 변화하여야 한다. 느린 과학은 단순히 ‘느려짐’이 목적이 아니다. 피실험 행위자의 반항, 평가 방식에 대한 저항, 과학자 자신의 주저함 등 여러 마찰이 만들어 내는 ‘느림’이다. 마찬가지로 빠른 과학도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빠른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속도를 늦추지 말기를 명령하고, 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할 시에는 생존하지 못하리라고 경고한다. 빠른 과학에 익숙해진 과학자들이 과학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느린 과학에 도전하려면 각자의 저항 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까지의 과학 제도를 재고하고 과학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스탱게르스는 빠른 과학의 한계에 대한 사례로 GMO를 논한다. 생명과학자는 GMO와 최신 과학기술의 성과를 통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GMO의 실현이 바로 식량난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GMO라는 새로운 기술을 접한 대중은 과학자에게 실험실에서는 제기되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기아의 사회경제적 원인, 기존 농업 생산 방식의 붕괴, 실험실에서 생산된 GMO와 실제 농지에 심긴 GMO 간의 차이 등이 지적된다. 스탱게르스는 대중이 과학의 혁신을 무조건 신봉하는 태도가 아닌 과학을 지적하고 질문을 던지는 감식가가 되기를 요구한다. 1장은 대중에게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관점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과학이 마주한 위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 과학자와 대중 모두가 지성적인 관계를 창조할 수 있는 ‘대중지성(public intelligence)’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뒤따르는 2장에서는 비과학적 질문들은 무시하고, 우려와 논쟁은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 치부하는 ‘올바른 자질(right stuff)’과 동시에 맹목적인 몽유병자의 태도를 가진 과학자들을 몽유병에서 깨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3장에서는 과학 연구와 평가라는 특정한 사례를 통해 무엇이 과학을 병들게 했고, 어떻게 병들어 있는지 서술한다. 4장은 쿤에게 영향을 준 루드비크 플렉(Ludwik Fleck)과 패러다임을 따르는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을 정의한 토머스 쿤(Thomas Kuhn)을 대조한다. 이 장에서 스탱게르스는 매력과 경쟁력의 논리에 의해 지식경제에 동원되고 있는 과학이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여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문명화된 과학(civilised sciences)’을 이루자고 주장한다. 5장에서는 빠른 과학의 지배 속에서 과학자들이 비과학적 질문으로 간주해 왔던 것을 직시하여 지금까지 무시한 것들과의 단절을 재연결하려는 작업의 필요성을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6장은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의 실천을 요구한다. 코스모폴리틱스는 만물의 생태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유일한 정답이 있다는 통념에 저항하며, 망설임을 정치 과정의 정당한 요소로 도입한다. 스탱게르스는 근대적 실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각자에게 중요한 것이나 각자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관계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장려한다. 이상에서 소개한 이 책의 흐름은 일관되거나 유기적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프랑스어 초판에서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4장 ‘루드비크 플렉, 토머스 쿤 그리고 과학을 느리게 하는 과제(Ludwik Fleck, Thomas Kuhn and the Challenge of Slowing Down the Sciences)’가 추가되었고, 2부 ‘Le poulpe du doctorat(The PhD Octopus)’가 삭제되었다. 또한, 한국어 번역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총 6개의 장 중에 3개의 장이 각기 다른 학술 행사에서 발표된 것이다.[2] 서로 다른 맥락에서 발표된 발표문들이 합쳐져 있어,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갑자기 다른 논점으로 옮겨간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스탱게르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조급한 마음으로 느린 과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오히려 급박한 상황일수록 이 내용이 과학자와 대중에게 잘 전달되도록 맥락이 충분히 보충되었어야 한다. 비유, 인물, 학술 용어에 대한 설명은 옮긴이들이 각주로 보충하고 있지만, 논의의 전체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탱게르스의 철학과 장별 내용 요약이 들어간 별도의 서문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스탱게르스의 목적은 회복, 즉 ‘되찾기(reclaiming)’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정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충격적인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탱게르스는 시장의 법칙에 지배되고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과학 연구와 그에 대한 평가 체제, 대중이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는 과학자의 태도, 사실에 대한 문화 부재 등과 같은 문제를 짚어낸다. 그 후에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른 과학의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려 하는데, 스탱게르스가 생각하는 자신의 임무는 이 상상력을 독자들의 마음에 작동시키는 것이다. 스탱게르스가 느린 과학보다 빠른 과학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도 빠른 과학이 초래한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질문과 어떻게 연결될지를 배워야 한다. 체념과 냉소에서 벗어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되 총체적 상호작용 속에서 개별적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습관을 육성하고 강화해야 한다. 깊이 보고 듣는 것은 사물들에 친숙해지고 관계를 맺는 것, 즉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지 않는 일이다. 이는 상대방을 결여된 존재로 간주하는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학을 돌보는 건 세상을 돌보는 일과 같다. 스탱게르스가 제시하는 과학(science)과 우려는 돌봄을 연상시킨다. 각자의 시선에서 과학을 접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던져진 질문에 대답하는 것, 조정과 마찰의 과정을 겪으며 과학은 성숙해져 갈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다른 과학에 대한 비전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각자가 가진 지식으로 과학에 의견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과학을 넘어 사회를 돌보는 일에 관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돌봄 역량은 상호의존적이다. 돌봄은 무관심한 세상에서는 발휘될 수 없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우려를 표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느린 과학은 과학을 독립적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돌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느린 과학은 완성된 완벽한 해법이 아니다. 느린 과학은 과학 제도를 재고하는 데서 시작하여 결국 과학 자체의 재창조를 목표하게 된다. 그렇다면 빠른 과학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빠른 과학이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은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스탱게르스는 “이 책이 단순한 낙천적 꿈이 아니라고 믿게 해준 모든 이에게” 헌정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스탱게르스가 단순한 낙천적 꿈이 아니라고 믿게 해준 사람들에게 의지했듯이 이 책의 독자도 스탱게르스와 그 너머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개인의 주저함 또한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요소이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면 마찰은 더 커진다. 이러한 연결은 빠른 과학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개인에게도, 전체적인 ‘되찾기’ 작업에도 힘이 된다. 이 책을 통해 느린 과학이라는 상상을 공유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다른 과학을 상상하자, 실천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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